[충청매일]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하는구먼요!”
“도적도 여사 도적인가! 허가받은 도적이지!”
“허가받은 도둑이라니요?”
“그렇지 않은가. 관아에 뇌물을 바치고 고을민들 물건을 대놓고 빼앗아가니 그게 관아에서 눈감아주지 않으면 있을 수나 있겠는가? 요즘에 들어와서는 더 발광들을 하고 있구먼 뭐가 급한지…….”
“요즘에 와서 더 그런다고요?”
“그렇다네. 뭔 똥줄 타는 일이 있는지 가을 빚까지 지금 당장 갚으라고 극성을 떨며 마을 사람들을 호달궈대니 전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응출이네처럼 목을 매는 거지! 천하에 배락을 맞을 놈들!”
차대길 노인이 악담을 퍼부었다.
청풍관내를 골골이 찾아다니고, 가을에 갚기로 한 빚을 당장 갚으라며 고을민들을 찾아다니며 갈구고 있다면 청풍도가 역시 엄청나게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청풍도가 김주태가 나라에 바칠 공납물품과 청풍관아에 갚을 곡물가지 한꺼번에 겹쳐 곤궁에 처해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창 꼬부랑재에서 몽뚱이 하나만 믿고 화전을 일구며 겨우 목숨 줄을 붙들고 있고 미물 같은 사람들까지 찾아다니고 있다면 마차쟁이 차대길 노인의 말처럼 똥줄이 탈 정도로 몹시 다급한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로 다급하다면 지금 청풍도가는 존폐의 위기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해서 가져갈 물산들은 있답디까?”
봉화수는 청풍도가에서 나온 사람들이 고을민들을 짓이겨 빼앗아가는 물건이 뭐가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물었다.
“조금이라도 돈이 된다면 인정사정없이 빼앗아가지. 그놈들은 인간이 아녀! 오죽하면 전디다 못해 목을 달겠는가?”
봉화수는 지금 서창에서 어떤 물산들이 나오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해서 그 물산들을 북진여각에서 먼저 사들인다면 서창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역으로는 청풍도가에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북진으로 돌아가면 그 문제도 상의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대길 노인은 응출네 내외가 목을 매달았다는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어르신 지금 서창에서 나오는 물산은 뭐가 있습니까요?”
“이런 산골에서 나올 물산이 뭐가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때가 뭐라도 나올 그런 때가 아니지 않는가. 뭐라도 소출을 보려면 아직도 한참을 지나야 밭곡물이라도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뭘 거둬갈 게 있다고 사람들을 호달군답니까?”
“여기는 산이 높으니 약초들이 많지 않겠는가. 밭에서 나온 곡물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도지에다 빌려먹은 양식으로 이미 동난 지 오래고, 짐승처럼 산속을 해매며 캐다 갈무리해놓은 약초를 팔아 지우 입도 끄스르고 가용도 쓰는데 그런 목숨줄 같은 물건을 빼앗아 가니 살아나갈 길이 막막한 거지. 그러니 죽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지금 서창에 집집마다 약초들이 많이 있습니까?”
“많기야 하겠는가. 그것이 많이 남아 있을 정도로 먹고 살 걱정이 없다면 뭣 때문에 아깐 목숨을 버렸겠는가? 아끼고 아끼다 더 견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팔아 쓰고 그래도 더 급한 일이 생길까 해서 꽁꽁 숨겨두었던 그런 것을 샅샅이 뒤져 빼앗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마을사람들은 어찌 산답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놈들이 그렇게 악독하게 사람들 것을 알궈 가겠는가?”
“하기야 그렇겠지요.”
“서창마을 사정이야 나보다 황칠규가 잘 알 것 아닌가? 그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이니 사람들 있는 곳이라면 샅샅이 다니지 않겠는가. 그 사람을 통해 알아보면 소상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겠군요. 황 객주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요.”
“마차는 바로 작업을 하겠네.”
“마차는 어르신만 믿습니다!”
“그건 염려 말고, 약조한 대로 쓸 만한 사람이나 보내주게!”
“그건 염려 놓으세요. 가는 길로 바로 보내겠습니다!”
봉화수가 마차쟁이 차대길 노인과 약조를 하고 서창을 떠났다.
봉화수가 북진으로 가기위해 꼬부랑재를 넘을 때 언덕 아래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띄엄띄엄 거북이 등 같은 움막이 몇 채 보였다. 그런데 응칠이네 집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났다면 동네가 떠들썩할 일이었다. 초상이 났는데도 어느 집이고 떠들썩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살기가 힘들어지니 사람들 마음도 점점 각박해진 까닭이었다. 꼬부랑재 아래를 휘돌아 함안 쪽으로 내려가는 강물이 발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