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나 그것은 눈 가리고 야옹이었다. 본래 고을민들이 부쳐 먹던 땅이었으니 돌려준다고 해도 그게 그거였다. 그래도 돌려준다고 하니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조권이었다. 일테면 돌려받은 땅에서 일 년 농사를 지어 나오는 소출이 보리 한 가마인데 세금으로 한 가마니를 걷어간다면 농사를 지어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이었다. 고을민들은 그런 농사를 등골 빼가며 지을 이유가 없었다. 땅을 돌려주기는 했지만 내 입으로 들어오는 곡물이 한 톨도 없는데 그 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개살구였다. 고을민들 모두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리면 김주태 역시 거금 일만 냥만 날려버리는 꼴이었다. 그러나 김주태는 그들 위에 있었다.

“김주태는 영감에게 돈을 바치고 우리 관내 모든 자투리땅을 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했어. 영감 입장에서도 양안에도 없는 땅이니 누구에게 뭘 준다하여 문제될 것이 없고, 자신은 곧 임기가 끝나는 대로 여기를 뜨면 끝나는 거여. 그리고 일만 냥이면 한양의 대감에게 약채를 바치고 자신을 대궐로 불러 달라고 할 수도 있는 큰 돈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서로 속셈이 맞아 양안에는 없지만 고을민들이 여적지 부쳐 먹던 땅에 대해 수조권을 딴 거지.”

“관아에는 다른 아전들도 많은데, 다른 아전들이 그걸 보고만 있었답디까? 그게 다 먹을거린데.”

그것은 최풍원 말이 맞았다. 고을민들을 등쳐먹을 게 있으면 어떤 명목이라도 만들어 한 쪽박 낱알도 빼앗는 자들이 아전들이었다. 그런 아전들이 눈앞에 좋은 먹이를 두고 김개동 혼자 먹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실권도 없는 부사에게는 돈을 바치면서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전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가만히 그 꼴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위인들이 아전이었다.

“다른 아전들은 그걸 어찌 할 수 없었지.”

“뭘 어쩔 수 없단 말입니까? 같이 하면 되지요.”

“생각을 해보게. 청풍관내가 좁다하나 사방 일백여 리가 넘네. 그리고 맨 산지여서 골골이 여간 많은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아무리 고을민들이 사사로이 부치는 땅이 많이 있다 해도 거기를 일일이 다니며 양안에 없는 땅을 조사해야 하는데 그걸 다른 아전들이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김주태는 도가 상인들과 행상들 같은 수하들이 많으니 골골이 누가 어떤 땅을 부치고 있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김주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

“그래도 아전들이 김주태 혼자 먹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 김주태가 다른 아전들한테도 세금의 이 할을 떼어주기로 했다네. 그 대가로 관아에서 하는 일이라며 공식 인정을 해주었지.”

“아니 고을민들한테 세금을 얼마나 뜯어내려고 저도 먹고 그 여럿의 아전들한테 이 할 씩이나 떼어준다고 약조를 했단 말입니까요?”

농민들이 경작하는 땅에 대해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징수하는 세금은 일 할 남짓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온갖 명목을 만들어 그것보다는 훨씬 높은 세금을 내야했지만, 그래도 아전들에게 이 할을 떼어주겠다고 했으면 이리저리 떼어먹고 이놈저놈 떼어먹다보면 도대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과연 입으로 들어갈 것이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엄청난 고리의 땅세가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더니 부사 영감님이나 아전들이나 고을민들 땅을 가지고 잔치를 했구먼요.”

“그게 아니였다네!”

“그게 아니라면 뭐가 또 있었답디까?”

“김주태는 꿍꿍이는 다른 데 있었다니까? 글쎄, 김주태는 그 땅을 농민들한테 되팔 생각으로 돈을 바치고 우리한테도 인심을 쓴 거여.”

“농민들한테 되 판다는 건 또 무슨 말씀이오?”

“김주태가 영감과 우리 아전들에게 약조를 하고는 곧바로 자기 수하를 골골이 보내 농민들에게 통보하기를, 땅은 본래 농사짓던 사람들에게 돌려주지만, 그 대신 세금은 거둬야겠다고 했구먼. 그런데 그 세금이 워낙에 높아 농사를 지어봐야 별 도움이 없는 거여. 당연히 사람들 반발이 있자 자기도 관아에 돈을 바치고 수조권을 따낸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겨. 그러니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땅을 사라고 했어. 수조권을 빙자해 땅을 팔겠다는 수작이었던 거지. 그런 잔머리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기가 찰 노릇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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