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형방나리 은혜를 모르면 그건 짐승 한가지지요. 그간 입은 은혜도 있고 해서 따로 준비를 해두었습니다요.”

최풍원이 나직한 소리로 김개동에게 고했다.

“하기야 부사 영감과 선을 맺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김개동이 생색을 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요.”

“그래, 그건 그렇고 내 껀 어디에?”

김개동이가 물었다.

“미향이 편에 두었으니, 나리 편안할 때 언제든 가져가시지요.”

“영감이 미향이를 무척 마음에 두고 있다네. 한 번 잘해 보시게!”

“모든 게 형방나리 덕분이지요!”

최풍원이 김개동을 추켜세웠다. 김개동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시게! 내가 들어가 부사 영감께 고하겠네!”

김개동이가 번개같이 금병헌 봉당을 뛰어올라가 동헌을 가로질러 부사가 집무를 보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 방문이 열렸다.

“내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청풍부사 이현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방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렇사옵니다. 고을 일로 바쁘신 와중에도 이리 만나주시니 하해와 같은 은혜에 소인은 감읍할 뿐입니다요!”

최풍원이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한껏 몸을 낮추었다.

“내게 할 말이 무엇이더냐?”

이현로가 재차 물었다.

“송구하옵지만 여기에서 말씀 올리기에는 좀…….”

최풍원은 자신과 함게 온 일행뿐만 아니라 동헌 마당에는 여러 눈과 귀가 있는지라 말하기가 거북해서 주저거렸다.

“말 못하는 것을 보니 공적인 일은 아닌가 보구나. 그렇다면 물러 가거라!”

이현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사 영감님, 그리 내치지 마시고 한 번 들라하여 얘기를 들어보심이 어떠하시겠는지요?”

혹여 일이라도 어그러질까 하는 마음에 김개동이가 다급해져서 이현로에게 간청했다.

“형방은 나랏일을 그리 하는가! 동헌은 백성을 위해 공적인 일을 보는 곳이거늘 어찌해서 사사로운 일로 함부로 고을민들을 관아로 불러들인단 말인가?”

이현로의 노한 목소리가 동헌 마당까지 들려왔다.

“그게 아니옵고 최 행수는 고을민들을 위해 애쓰시는 부사 영감의 노고에 감읍해서 백성 된 도리를 하겠다고 저렇게 물산들을 가지고 왔습니다요. 그 마음이 갸륵하니 내다보시기라도 하심이…….”

김개동이가 동헌 마당에 있는 다른 관속들도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나야 임금의 명을 받고 맡은 바 일을 했을 뿐인데 뭐 감읍까지……. 어험!”

이현로가 거드름을 피웠다.

“그래도 백성들 어린 마음이니 한 번만 봐주시기라도 하심이?”

김개동이가 거듭해서 간청을 했다.

“어허, 그것 참!”

이현로가 김개동의 청을 못 이기는 척 동헌 대청으로 나섰다.

“영감, 저기를 보시옵소서! 북진여각 최 행수가 직접 왔습니다요. 최 행수! 얼른 인사 올리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겐가?”

김개동이가 손가락으로는 동헌 마당에 부려진 지게를 가리키고, 입으로는 인사를 차리라며 설레발을 쳤다.

“부사 영감님, 그간 무강하셨습지요. 수시로 찾아뵙고 인사를 차렸어야 하는데 배운 것 없는 장사꾼인지라 그러하지 못했사옵니다. 하해 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최풍원이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어험!”

이현로가 최풍원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그 뒤로 일꾼들이 지고 온 물건에만 눈길이 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딴청을 부렸다.

“영감님, 무지몽매한 고을민들 일로 얼마나 노심초사하시옵니까? 지가 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이번에 한양에서 내려온 귀한 서양 물건과 즈이 집에 있는 특산품과 저기 돈을 좀 마련해 가져왔습니다요!”

최풍원이 이현로를 바로 쳐다보지 않은 채 여러 지게들 중 돈이 들어있는 쾌를 가리키며 힘주어 말했다.

“저거 쾌 세 개가 모두 돈인가 봅니다, 영감!”

김개동이가 이현로에게 귀엣말로 했다.

“그걸 왜 내게 가져왔느냐?”

여전히 이현로는 최풍원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척 가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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