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뭔 기름이 화약처럼 불이 붙는구려!”

“이게 서양에서 아궁이 지피는 기름이라오.”

“이 배에는 별별 개 다 실려 있구려!”

“대국에 다녀온 장사꾼들 얘기를 들어보면 거기는 없는 게 없는 별천지라는구먼. 거기에 대면 우리 한양 장마당은 소꿉장난에 불과하다고…….”

“한양 장마당이 소꿉장난이라면, 이런 시골은 난전만도 못하겠구려!”

봉화수는 배영학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가 죽기도 했지만, 북진여각도 뭔가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북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허탄만 거슬러 올라가 왼쪽으로 뱃머리를 틀면 북진나루였다. 며칠 전보다도 강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중선인대도 강물을 헤치고 올라가느라 뱃꾼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여기 허탄만 올라서면 북진으로 가는 물길은 수월할 거요.”

봉화수가 노질을 하는 뱃꾼들에게 말했다.

“뱃길이 끊기면 여기는 뭘로 물산들을 실어 나르시오?”

배영학이가 강바닥이 훤히 보이는 덕판 위에서 물었다.

“갈수기에는 지토선이 다니고, 육로는 나귀나 지게로 져나르지요.”

“그럼 갈수기에는 많은 물산들을 일시에 나르는 것이 불가능하겠구려?”

“그런 셈이지요. 하지만 갈수기는 장마가 지면 풀리니 그동안에는 갈무리를 해놓지요.”

“물건이라는 것도 다 때가 있는데, 때를 맞춰주지 못하면 못 파는 거 아니오?”

배영학이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배영학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지만 봉화수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강물이 줄어들어 큰 배들이 다닐 수 없게 되면 육로를 통해 행상들이 걸어 다니며 장사를 하는 것이 오래된 장사법이었다. 행상들이 경상들의 물건을 받아 골골을 누비며 팔아오면 그것을 갈무리해두었다가 장마가 져서 강물이 불어나면 싣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 백년이 넘도록 해오던 것이었다. 물론 배영학의 말처럼 강 하류에서 어떤 물건이 딸린다는 전갈을 받고도 그곳까지 물건을 가져갈 수가 없고 설령 운반을 했다고 하더라도 때를 놓쳐 무신이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이곳에서는 빈번하게 생겨나는 일이었다. 그런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을 어떻게 사람 힘으로 발쿨 수 있단 말인가.

“저기가 북진나루요!”

배가 허탄을 거슬러 올라 뱃머리를 틀자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포구가 나타났다.

“아니 저기가 북진나루란 말이오?”

배영학이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물었다.

“그렇소이다. 저기가 북진나루요!”

봉화수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런 벽지에 저런 나루가 있다니, 마치 내가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 싶소이다.”

배영학은 북진나루 안으로 들어서서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성이 가까운 큰 고을의 나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성에서 제일 번잡하고 크다는 삼개나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나루였다. 나루의 크기도 그러했지만 배가 닻을 내리고 짐을 부릴 수 있는 시설도 정말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아직 놀라긴 이르오!”

봉화수가 배에서 내려 배영학을 북진여각으로 앞장서며 말했다. 봉화수와 배영학 일행이 나루터 언덕배기를 올라 북진장마당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규모야 한양의 장마당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제법 짜임새 있는 상전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아니, 이런 시골구석에 상전이 있는 장마당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소이다. 이게 전부 북진여각 것이란 말이오?”

“그렇소이다.”

봉화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덤덤한 척 답했다.

“저 물건들은 다 이 근방에서 나는 것들이오?”

배영학이가 상전마다 진열되어 있는 산물들을 보며 물었다. 이제껏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를 했지만 시골구석에 이처럼 잘 완비된 장마당은 보지를 못했다. 게다가 고급지지는 않았지만 상전마다 쌓여있는 물건들이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었다. 절 물건들을 한양으로 가져간다면 큰 이득을 챙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보시오. 우리 흥정을 다시 해보십시다!”

배영학이가 먼저 황강에서 있었던 거래를 다시 하자고 제의했다.

“일단 오늘은 우리 여각에서 쉬고 천천히 얘기를 해보십시다!”

봉화수가 배영학의 제의에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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