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지난 10일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잠시 잊을 수 있는 날이었다. 세계 영화역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92년 전통의 아카데미 역사를 바꿨으며 세계 영화역사를 새로 쓰게 된 주인공이 됐다.

아카데미는 골든글로브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지만, 오랫동안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비영어권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시상을 피할 만큼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제였다. 10여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이 같은 흐름에 대해 비판이 일자, 아카데미 측은 변화를 시도하려는 흉내를 내며 여성감독이나 흑인감독에 대해 선심을 쓰듯 상을 주었다. 봉준호 감독 역시 아카데미의 이 같은 편견과 권력에 간간히 쓴 소리를 해왔던 터다.

지난해 개봉한 ‘기생충’은 칸 영화제 등 북미유럽권에서 큰 반항이 일기 시작했고 미국대륙으로까지 확산됐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목에서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뮌헨 영화제를 비롯해 지금까지 57개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50개가 넘는 영화상, 160여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야말로 진기록을 연출했다. 급기야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국제영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는 수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으나 이변이 연출됐다.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품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기생충’은 한국에서 개봉 53일 만에 1천만 관객 고지를 밟았으며, 한국을 시작으로 프랑스·스위스·호주·북미·독일·일본·영국 등 67개국에서 개봉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뉴욕과 LA 3개 상영관에서 선개봉 된 후 역대 북미에서 개봉한 모든 외국어 영화의 극장당 평균 매출 기록을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웠다. 개봉 후에 관객들의 입소문이 더해지며 상영관이 600개를 넘어섰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둔 2월 첫째 주에는 1천60개까지 늘어났다. ‘기생충’으로 벌어들일 수입도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왜 ‘기생충’에 열광하게 되었나를 곱씹어 봐야 한다. ‘기생충’은 현재 세계 어느 나라의 관객이나 공감 할 수 있는 주제를 다뤘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함정에 빠져 있는, 빈부차이로 인한 계층간의 신분격차 등 자본주의 모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감독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주제의식과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대중적인 장치를 함께 갖췄다. 무엇보다 감독의 연출력과 그의 이력도 한몫했다고 본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로 평가했다. MB정부와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내 정부비판 세력 퇴출 건에 봉 감독과 주연을 맡은 송강호가 대표적인 블랙리스트로 포함됐다는 점을 상기했다. 블랙리스트가 계속됐더라면 ‘기생충’은 오늘날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린 ‘기생충’은 자유로운 사회가 예술에 얼마나 중요한가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썩어가는 자본주의라는 환부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감동과 함께 외면하고 싶은 불편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수작이다. 대한민국의 언어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정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 탄생에 감독과 모든 스태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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