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다고 최풍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서창객주 황칠규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봉화수가 동몽회원들을 대동하고 급히 서창으로 내려갔다.

“황 객주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봉화수가 황칠규에게 물었다.

“일단 황강으로 가세!”

서창에서 황강은 시오리 길이 족히 되었다. 황강은 송만중의 빈자리를 황칠규가 우선 임시변통으로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황칠규를 따라 봉화수 일행이 황강으로 급히 달려갔다. 황강 문화마을 앞 강나루에는 중선 크기의 배 한 척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충주와 청풍 관내를 다니는 그런 허름한 지토선이 아니었다. 배는 중선만 했지만 새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고급 져보였다.

“저 뱁니가?”

“그렇다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흘 전부터 정박을 하고 저기 주막에 머물고 있다네.”

황칠규가 앞에 큰 우물이 있는 나무대문 집을 가리켰다.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일단 청풍도가 놈들에게 넘기려는 것은 막아놓았네.”

“청풍도가 놈들은 어떻게 알았대요?”

“그건 알 수 없지. 나도 주막집 주인한테 한양에서 장사꾼들이 값진 물건을 싣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는데, 벌서 도가 놈들이 먼저 와 침을 바르고 있더라고. 대행수로부터 지시받은 것도 있고 해서 나도 달려들어 북진으로 가면 월등히 좋은 금을 받게 해줄 터이니 가자고 했지.”

“그럼 곧바로 올라오지 왜 전갈을 보냈습니까?”

“도가 놈들이 장사꾼들 앞길을 막고 오도가지도 못하게 하는 겨. 그러니까 장사꾼들도 어쩌지 못하고 그럼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이리로 데려오라는 겨. 그러니 전갈을 해야지 어쩌겠는가?”

“무슨 물건을 싣고 왔다 합디까?”

“그건 나도 모르지.”

“여하튼 가보십시다!”

황칠규가 앞장서고 봉화수와 동몽회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저 우물이 숫한 사람들이 죽은 우물이라네!”

주막집 나무대문을 들어서려다 걸음을 멈추고 황칠규가 집 앞 우물을 가리키며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황칠규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본래 이 집은 남양 홍 씨네 방계가 살던 집이었다. 방계라고는 해도 여러 대를 이곳에 뿌리내려 살았고 워낙에 세도가 당당했던 집안이라 웬만한 벼슬아치는 문간에 와서도 큰소리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기세가 높았다. 그런데도 홍 씨 집안은 마을사람들에게 행세하지 않았다. 그것은 길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양 홍씨네 집 바로 앞은 바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길을 따라 남한강 연안의 풍광을 구경하려는 양반님네들, 일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찾아들었다. 짐승이라도 위급해 내 집으로 뛰어들면 잡지 않고 배불리 먹여 놔주는 법인데 어찌 사람이 내 집을 찾아왔는데 박대를 하는가. 그것은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일이 아니다. 선대에 한양에서 어느 왕릉을 관리했다하여 묘 참봉으로 불리던 홍 참봉이 가솔들에게 항시 이르던 말이었다. 그렇게 인심 좋던 홍 참봉네 집이 몰락해 이제는 주막집으로 전락한 것은 이 집에 천주교인들의 소굴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었다. 남한강 물길로 인해 교통이 편리했던 이곳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드나들었다. 그중에는 천주교인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황강에서 물길로는 지척 거리인 사기리 옹기쟁이들도 홍 참봉네 집을 드나들던 교인들이라 했다. 그러다 홍 참봉 집안의 도움을 받아 거기에 옹기마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홍참봉네 집안 젊은 자식들이 모두 서양 귀신에게 빠졌고, 관아에 발각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홍 참봉네 집안 젊은 아이들을 모두 이 우물에 집어 처넣어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황칠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는 몰라도 우물에 대한 섬뜩함보다도 나무로 짠 대문부터 느낌이 달랐다. 대부분 주막들 문은 삽작으로 되어있는데, 황강 문화마을 주막은 들어가는 대문부터 위세 높은 양반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대문 위세에 걸맞게 널찍한 마당이 나타났다.

“저쪽 사랑으로 가세!”

황칠규가 대문을 들어서며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사랑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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