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지난해 12월 추운 어느 날 대구 반월동 분수대 앞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8~9세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떨면서 신발가게의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어떤 아줌마가 맨발의 그 소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측은하게 지켜보더니 조심스럽게 소년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얘야! 진열장을 왜 그리 쳐다보고 있니?”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지금 하나님에게 저 신발 한 켤레만 저에게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인은 소년의 말을 듣고는 그 소년의 기도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그 소년의 손을 꼭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신발과 양말 몇 켤레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물이담긴 세숫대야와 수건을 빌러 가게 뒤편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힌 다음 소년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 중에서 한 켤레를 소년의 언 발에 신겨주었다. 소년의 얼은 발에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한참을 지나 살며시 얼굴을 들더니 부인의 손을 잡고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줌마가 하나님의 부인신가요”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 끌어안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느 잡지에서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세상에는 의지할 곳 없는 버림받은 고아가 얼마나 될까. 그 소년을 기르지 못하고 버린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추위 속에 맨발의 소년을 보고 차마 지나칠 수 없어 따뜻한 신발과 양말을 사 신긴 부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인지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도와주세요. 라고 써 붙인 작은 상자를 목에 걸은 젊은이가 내 앞에 다가왔다. 허름한 옷차림에 손을 붕대로 감고 발을 절면서 연일 굽실거린다. 그가 목에건 작은 상자에 써 붙인 종이에는 일하다 몸을 다처 가족과 먹고 살 길이 없다는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불현 듯 잡지에서 읽은 그 부인의 측은지심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을 만져보니 갈색 지폐가 손에 집히는 데로 그 상자에 넣어 주었다. 그 불구의 청년은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고 목례를 하면서 내 앞을 떠났다. 짧은 시간에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말없이 불우한 그 청년을 도와주었다는 흐뭇한 마음이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것, 주고받는 사랑의 기쁨이라 생각이 들었다.

살기가 힘든 세상이다. 가정이 흩어지고 인정이 메말라 온정이 드문 세상이다.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거액을 남몰래 훔쳐갔다 잡힌 사람도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 젊은 청년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살기 힘들어 버려진 아이들은 맨발의 소년처럼 거리를 해매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흙수저가 된 탓을 부모를 원망하고 70대 노부모가 사는 집이 불에 타 사망했다. 방화범은 바로 그 노인의 아들이라는 방송을 들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막다른 세상이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고 노인 복지를 위한다고 500조가 넘는 천문학적 예산은 무엇에 쓸 것인가. 모두가 국민이 낸 혈세다. 사각지대에 놓인 어렵고 불우한 사람부터 따뜻한 사랑의 밀알이 되도록 쓰여지기를 기대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