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건 안 되네!”

윤 객주가 최풍원의 생각을 단칼에 잘랐다.

“그럼 어르신, 묘안 좀 내주세요!”

“자네만 똑똑한가? 그들은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장사꾼들일세. 술수는 자네보다 수십 수나 높을걸. 그런 고수들에게 잔재주를 피워? 자넨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걸세. 맹수를 잡을 때는 단방에 숨통을 끊어야지, 덧들여놓으면 오히려 화만 당하지.”

“어떻게 그들을 단방에 잡는답니까?”

“대장쟁이가 칼만 만들면 되지, 칼까지 쓰는가? 내가 이천 냥을 더 줄테니 그걸 운용해보게!”

“예에? 오천 냥이나요?”

최풍원이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고 이제껏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거금이었다.

“세상에 공돈은 없네! 일이 잘되면 원금을 갚는 것은 물론이고, 자네 물량 중 절반은 날 통해 거래해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그래, 돈은 어떻게 쓸 참인가?”

“…….”

갑작스런 윤 객주의 물음에 최풍원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청풍도가가 제일 걸림돌 아닌가? 거길 꺾는 데 쓰게. 청풍도가가 어디 만만하겠는가. 거길 꺾으려면 돈이 앞장을 서야지. 앞장을 서려면 돈이 넉넉해야지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에게 삼천 냥을 빌려 하려는 일은 이천 냥은 임방 객주들과 보부상들에게 풀어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을 매입하는데 쓰고, 일천 냥은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약채로 쓸 요량이었다. 그런데 윤 객주는 오천 냥을 선뜻 내준 것이었다. 돈이라는 놈은 묘한 놈이어서 오천 냥이라는 거금이 생겨나자 깜깜한 밤길 같던 눈앞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고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었다.

“꼭 써야하는 곳이라면 아끼지 말고 한꺼번에 쏟아부어야 하네. 단 솥을 식히려면 동이째 불을 퍼부어야지, 물 아낀다고 바가지로 끼얹다가는 솥도 식히지 못하고 물만 동나고 마는 법이네. 약채도 쓰려면 상대가 생각지도 못했던 만큼 뭉텅이로 앵겨야지 약발이 직통으로 듣는 거여!”

“윤 객주 어른, 뭔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요.”

“돈은 씨앗과 같아 쟁여놓으면 썩어버리지만 좋은 밭을 만나면 화수분처럼 불어나지. 큰 장사꾼은 그런 밭을 만나면 돈을 아끼지 않지. 거상이 되려면 밭을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때에 따라 돈도 잘 운용해야 하네!”

윤왕구 객주는 이미 최풍원의 속내를 환하게 읽고 있었다. 최풍원이나 윤왕규 객주나 이번 싸움에 북진여각의 사활이 걸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청풍도가만 쓰러뜨리면 청풍 제일의 부자가 되는 것은 받아놓은 밥상이었다. 그런데 최풍원은 그 밭에 뿌릴 씨앗이 없었다. 윤 객주는 최풍원에게 그 씨앗을 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만의 하나 일이 틀어지면 윤왕구는 씨앗 값조차 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윤 객주는 삼천 냥을 빌려달라는 최풍원의 요구에 이천 냥을 더 얹어 오천 냥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객주 어른, 이 돈은 제가 꼭 갚겠습니다요.”

“장사꾼이 신용을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것은 옳네. 허지만 지금은 신용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네. 지금은 그것만 걱정하게. 자네는 지금 청풍도가에서 탄호대감에게 올릴 물산 때문에 저리 전전긍긍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다른 게 또 있다네!”

“다른 것이 또 있다니 그건 금시초문입니다요, 그게 뭡니까?”

“이번에 청풍도가에서는 관아에 특산품을 공납하기로 되어 있네. 우선 그 물산을 먼저 선점해서 도거리하게!”

한양의 중앙관서나 궁중에서는 필요한 물품을 시전인 육의전을 통해 공급 받았다. 그러나 육의전에서 취급하지 않는 특산품들은 일반 상인들에 의해 조달 받았다. 본래 각 군·현에서 나오는 특산품은 지역 관아로부터 직접 공납 받고 있었으나, 중간 관리의 부정으로 공물 폐단이 심하자 이를 없애기 위해 쌀로 대신 내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지역은 아직도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으로 공물을 내고 있었다. 청풍도 평지보다 밭이 많은 산간지대여서 쌀 생산이 적었다. 그래서 청풍에 사는 백성들은 아직도 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을 관아에 공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청풍관아에서는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인 공물을 한양으로 올리지 않고 빼돌려 청풍도가에 불하하여 그 돈을 유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공물은 장부에만 남아있을 뿐 관아 창고에는 실물이 없는 채로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런 실정을 알지 못하는 한양에서는 나라에 큰 연회가 있자, 충주목사를 통해 청풍 관내에서 나는 특산품을 공물로 바치도록 하명을 내렸다. 하명을 받은 청풍부사는 몸이 달아 빠른 시일 내에 특산품을 구해 관아 창고에 입고시키도록 도가를 닦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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