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대도 청풍장을 가는 이유가 뭐요?”

손해를 본다면서도 장사꾼들이 청풍장을 가는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봉화수가 물었다.

“평생을 댕긴 장이니 발걸음이 익은 까닭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버릇처럼 가는 거지요.”

몸에 붙은 습관이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인근에서 젤루 큰 장이 청풍장 아니오. 시세도 그렇고, 장 돌아가는 형편도 그렇고, 거기를 가야 이런저런 사정을 잘 알 수 있으니 별 재미를 못 봐도 가는 거지요.”

“북진장은 어떻소이까?”

봉화수가 은근하게 장사꾼들의 속내를 물었다.

“북진은 새장터지요.”

“흔 장터보다는 새 장터가 좋지 않소이까?”

“새 옷이 좋기는 하지만 몸에 익숙하지 않아 뭔가 겉도는 그런 것 아니겠소.”

“북진장이 겉 돈다는 것은 어떤 것이오?”

“그걸 어찌 말로 하겠소이까. 뭔가 막 하고는 있는데 어설퍼보이는 그런 것이랄까……,몸에 착 감기려면 아직 한참 세월이 흘러야 하지 않겠소이까?”

봉화수는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청풍장의 연륜이 뿌리 깊다는 것을 느꼈다. 장사라는 것이 이해관계와 밀접한 것이어서 득실에 따라 언제든지 쉽게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굳어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장사라는 것이 단순하게 물건만 팔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팔고 사기위해 필요한 여러 사정도 듣고 보기 위해 장이 필요한 것이었다. 북진장이 새로이 시작되었지만 장꾼들의 발길을 청풍장처럼 잡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손해 보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장꾼들을 청풍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청풍장의 또 다른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청풍장을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청풍장의 상권을 꺾으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객주님들의 처신이 무엇보다 중합니다! 여러 객주님들의 처신 여하에 따라 우리 북진장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청풍장으로 흘러가는 물산들을 단도리하는 것도 중요하고, 장꾼들의 인심을 우리 북진으로 돌리는 것도 다 중합니다. 각별히 마음을 써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청풍도가에서 눈치 채지 않도록 은밀하게 하셔야 합니다.”

봉화수가 청풍도가 인근의 객주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영춘과 영월로 올라갔다. 청풍장의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남한강 상류의 영춘이나 영월의 물산도 보부상이나 행상을 통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봉화수는 영춘의 심봉수 객주와 영월 맡밭의 성두봉 객주를 만나 북진여각의 의도를 전달하고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어떤 물산들도 철저하게 막을 것을 당부했다.

최풍원 역시 북진여각에서 청풍도가를 염탐하기 위해 풀어놓은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북진을 찾아오는 경강상인들을 만나 청풍도가보다 나은 호조건을 제시하며 청풍도가와 거래를 끊고 북진여각과 거래할 것을 부탁했다. 또 청풍도가와 거래하는 인근 지역의 장사꾼들과 보부상들을 비밀리에 찾아다녔다. 장사꾼들 중에는 청풍도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장사꾼들에게 보복이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었다. 청풍도가 장사꾼에게 하는 보복이라는 것은 물건을 대주지 않는 것이었다. 장사꾼에게 물건을 대주지 않는다는 것은 소작인에게 땅을 빌려주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농사꾼이 부칠 땅이 없는 것이나 장사꾼에게 팔 물건이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장사꾼에게 물건은 목숨 줄과 한가지니 어떤 경우라도 청풍도가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억울해도 매달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 이해관계만 해결되면 북진여각으로 들어붙을 여지는 얼마든지 상존했다. 청풍도가를 흠집 내려면 그런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최풍원은 어떤 식이든 빠른 시일 내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토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청풍도가에서 눈치를 채고 훼방을 놓지 못하게 재빨리 방안을 세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봉화수가 북진여각으로 돌아오는 즉시 청풍도가로 염탐 나갔던 도식이와 동몽회 강수를 비롯한 아이들을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전객주들도 배제시킨 채 북진여각 별채에서 사람들이 비밀리에 모인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