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 행수는?”

강장근이가 물었다.

“대행수님은 몸이 편치 않아서…….”

봉화수가 거짓말을 했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최풍원이 안 나오고 어째 잔챙이만 나왔느냐?”

송만중이 노골적으로 봉화수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

봉화수가 대답 대신 송만중을 쳐다보았다. 송만중의 얼굴에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왼쪽 눈 언저리는 눈이 감길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피부는 울긋불긋하고 얼굴은 우글쭈글 윤곽이 비뚤어져 있었다. 봉화수는 송만중의 끔찍한 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네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송만중이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대며 봉화수에게 말했다.

“그때 네놈을 아예 죽여 버렸어야했는 데 그게 후회막급이다.”

봉화수가 주눅 들지 않고 당차게 맞섰다.

“그땐 내가 엉겁결에 당했지만 이젠 어려울 것이다.”

송만중 좌우에는 그의 수하들이 틈 하나 없이 에워싼 채 봉화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언제든 또 다시 기회가 오면 그땐 반드시…….”

“이놈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입만 살아있구나. 오냐, 이제부터는 내가 최풍원이와 너를 자근자근 씹어주지!”

송만중이가 이를 응시 물며 오도독오도독 씹는 소리를 냈다.

“자아- 두 사람 싸움은 나중에 하고, 우선 용건부터 이야기 합시다.”

강장근이가 두 사람을 말리며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종용했다.

“강 선주, 북진여각이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싹을 문질러 버립시다!”

송만중이 또다시 이빨을 ‘빠지직’ 하고 갈았다.

“지금 북진여각에 쌓여 있는 특산물과 저어기 우리 배에 실려 있는 곡물 이천 섬과 맞바꿉시다.”

강장근이 봉화수에게 말했다.

“갑자기 거래 조건을 바꾼 이유가 뭐요?”

봉화수는 지난번 강장근과 최풍원과의 사이에 결렬되었던 타협을 말하는 것이었다. 강장근 선단은 자신들이 인위적으로 폭락시킨 곡물가를 기준으로 북진여각의 특산물을 매입하려고 시도했었다. 당연히 그 협상은 깨지고 지금까지 서로 살을 깎는 경쟁을 해오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최풍원이 일단 물러서 있는 상태였다. 그러면 상대방 숨이 끊어질 때까지 더욱 더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사꾼들의 습성이었다. 그런데도 강장근과 송만중은 난장에서 곡물가가 폭락하기 전의 값으로 특산물을 곡물과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지금까지 북진에 들어와 난장을 흐리며 피터지게 장사를 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우리가 급히 한양으로 싣고 갈 대량 물산이 생겨 급히 떠나야 하기 때문이오.”

“송 객주가 이곳 사정을 잘 알 터이니 맡겨도 되잖소?”

“그……그건, 송 객주도 같이 한양으로 갈 거요.”

봉화수의 물음에 순간, 강장근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스쳤다. 무언가 상당히 미심쩍었다. 등짐을 지고 다니는 소규모 행상이라도 달포 정도는 계획을 세워 장삿길을 다니는 법인데, 대규모 선단이 한 달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갑자기 바뀐다는 것도 이상했다. 송만중과 강장근의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송만중이가 봉화수에게 지금부터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고 분명 엄포를 놓았었음에도 강장근이는 송만중과 한양으로 같이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또 쓰레기나 다름없는 곡물을 싣고 강 가운데 정박해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 뿐이었다.

“그래, 물산은 어떤 방법으로 맞바꾸겠소?”

봉화수가 물었다.

“일단 우리 곡물을 확인하고 당신네 특산물을 선적해 주시오.”

봉화수가 강장근을 따라 나루터로 갔다.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강장근 선단의 배에는 곡물과 잡화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강장근이 그중의 한 배로 봉화수를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뱃전은 물론 후미까지 곡물 섬이 그득하게 실려 있었다.

“얘들아, 거기 곡물 섬을 하나 내려 바닥에 쏟아 보이거라!”

강장근의 말에 담꾼이 곡물 섬을 풀어헤치고 바닥에 쏟았다. 눈보다도 하얀 쌀이 수북하게 쌓였다.

“저쪽 것도, 그리고 저쪽 것도 한 섬 가져와 보시오!”

봉화수가 배 후미에 쌓여있는 곡물 더미를 가리키며 담꾼에게 말했다. 담꾼이 섬을 어깨에 들쳐 메고 와 다시 바닥에 쏟았다. 여전히 흰 쌀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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