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셨습니까. 힘센 쪽에 붙어서 편한 길 가시지. 총장님 덕분에 후배 검사들은 살아있는 정권 관련 수사는 절대 엄정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배웠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있는 권력’ 조국 일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로 여권과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던 터에 현직 평검사인 장진영 검사가 반어적 표현으로 윤 총장을 응원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저 윤 총장을 따르는 한 후배 검사의 한탄 정도로 여길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칼을 들이대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일이 된다. 윤 총장이 과거 정권의 적폐수사에 힘을 쏟을 당시엔 연일 윤 총장의 개혁과 정의 수호 의지를 치켜세우던 청와대와 여권이, 검찰·법무 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로 내세웠던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이자 ‘검찰이 정치를 한다’며 온갖 악설과 압박을 가하는 논리적 근거다.
윤 총장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넘어 또 하나의 ‘살아있는 권력’으로 인식되는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의 권력형 비리와 소위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을 빚고 있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수사 배경에 대한 수사 역시 ‘정치적 수사’에 해당한다.
청와대와 여권의 논리대로라면 검찰은 절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어떤 수사를 벌여도 안된다.
만일 이에 반한다면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행사하는 명백한 권력남용에 해당한다.
검찰개혁의 절대적 필요성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필요성의 탄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말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부여된 권력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고,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배척하기 위해선 한 평검사의 말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눈과 귀를 가리면 될 일이다.
그저 ‘과거의 권력’에 대해서만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하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검찰개혁일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하는 것일까. 단언코 아니다. 정부와 여권의 행태가 오히려 정치검찰의 고착화를 강요하는 일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시각과 원칙을 적용,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은 과거의 권력이나 미래의 권력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정의롭고 공명한 사회 구현을 위한 준엄한 도구로써 검찰권력의 회복을 추구한다면, 무엇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검찰개혁의 근본적 모태를 착상(着床)시키기 위한 정부와 여권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중국의 정치가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개혁이든 혁명이든 자기 자신부터 해야 한다”고 변화의 주체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공산당 지도자의 말이라는 촌스러운 이념적 공방은 차치하고, 이 말은 어느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검찰 스스로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개혁의 당위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 또한 잘못된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진정한 개혁을 주도하는 성공한 정권이 되고자 한다면, 사시적(邪視的) 편견을 과감히 벗어나고 때론 읍참마속의 결단과 고통을 통해 국민이 원하고 신뢰하는 냉철한 자기개혁이 절실하다는 점을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