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장터로 나가보세!”

두 사람이 요기를 마치고 일어서려 할 때 마당 한 구석에서 낮술에 취한 장꾼 한 사람이 흥얼거리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다.

짚신에 감발 치고 / 용장에 패랭이 쓰고

꽁무니에 짚신 차고 / 무거운 짐 이고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이장 저장 돌아치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 장바닥을 누빌 적에

사람에게 짓밟히고 / 텃세한테 괄세받고

돌도부장사하고 / 서산에 해가져도 이내 한 몸 쉴 곳 없네

어쩌다 병이 나면 /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슬프도다 우리 인생 / 이럴 수가 어찌 있소

드팀장수 흥섭이와 재복이도 흥얼흥얼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며 앵두갈보네 주막집을 나섰다.

난전이 벌어지는 장마당에는 아침나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장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남새전에는 지난해 묵나물로 갈무리해 두었던 취나물·참나물·고사리·더덕·도라지 같은 산나물과 들나물들이 마늘·고추·참깨·들깨와 함께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씨앗장수는 수십 개의 자루 주둥이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채소며 약초 씨앗들을 벌려 놓았고, 피륙전에는 무명·명주·삼베가 상전 좌판 위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옹기전에는 배불뚝이 항아리·날렵한 항아리·앉은뱅이 항아리·물 항아리·자배기·동이·방구리·고추장 항아리·간장독·새우젓독·소주고리·시루·똥장군·오줌장군·사기요강·뚝배기·사기대접·약탕기 같은 장독과 질그릇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목물전에는 알곡을 고르는 키·절구통·떡가루를 치는 어레미·전을 부쳐두는 채반과 광주리·술을 뜨는 용수·홍두깨·방망이·도마·이남박·나무숟가락·밥주걱·조리·쳇다리·지게·발채·삼태기·장목비·싸리비·대나무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그득했다.

신발전에는 왕골·부들·고은·엄짚신·삼신·절치·탑골치·무리바닥·지총 미투리 같은 거친 신발은 한 죽씩 코를 꿰어 묶인 채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가축전에는 어리에 담아놓은 닭과 병아리, 목사리에 묶여 있는 강아지와 개·염소들, 돼지들이 지게에 묶인 채 실려 있었다. 약초전, 지전, 생수철전도 장꾼들을 맞이하기 위해 물산들을 진열하느라 분주하게 돌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반 토막 장이었다. 난장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로 북진은 오래간만에 북적거리고 새로 만든 상전마다 물산들이 쌓이기는 했지만, 모두 이곳 인근에서 나는 물건들뿐이었다. 정작 사람들이 매일처럼 필요로 하는 생필품은 보이지를 않았다. 곡물전이나 어물전, 그리고 잡화점은 텅텅 비어 있었다. 봉화수가 갖은 고생 끝에 영남상인들을 이끌고 가져온 곡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물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장꾼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려면 경강상인들이 올라와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온다고 약속했던 시각도 이미 지난 후였다. 난장에는 사람들은 몰려들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들이 턱없이 모자라니 수급 조절을 위해 북진여각에서는 가지고 있는 물산조차 풀어놓을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대행수 어른, 우리 곳간에 있는 특산물은 외지 장사꾼들이나 눈독을 들이는 물산이지 근방 장꾼들에게는 노다지 보는 것이니 별 소용없는 물건 아니겠습니까요? 더구나 경상들이 올라와야 그런 특산품 가치를 알아보고 허벌을 하며 달려들 텐데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요.”

북진여각 안채에서는 최풍원 대행수와 봉화수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난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게 말일세!”

봉화수의 답답한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최풍원이 남 얘기하듯 여사로 말했다.

최풍원 대행수는 만약 경강상인들이 올라오지 않으면 그들에게 넘기기로 약조한 특산품을 급매해서라도 장꾼들이 필요로 하는 곡물과 필수품들을 매입할 생각이었다.

그렇더라도 한양의 경강상인들이 경강선을 끌고 북진나루에 올라오지 않는다면 난장은 최풍원의 의도대로 성시를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 청풍도가의 상권을 북진으로 빼앗아오기 위해 장마당을 새로 만들고 상전도 짓고 나루터도 확장했다. 단단히 벼르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난장이 성시를 이루지 못한다면 북진여각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미 틀어진 난장을 이제 와서 접고 다음으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풍원 대행수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속을 알기나 하는지 난장이 틀어진 첫날은 어둑어둑 저물고 있었다. 북진여각 객방에서는 왁자한 장꾼들 소리가 들려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