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요새 놈들은 너무 이재만 밝혀 문제여.”

“남지도 않는 장사를 뭣 하러 한대요?”

“이눔들아 사람이 먼저지, 내 아가리에 들어가는 이득이 먼저냐? 사람들 다 끊기고 물건만 남으면 네놈들은 누굴 상대로 장사를 해먹고 살거냐?”

“으이구! 속 터져서……. 아저씨랑 무슨 말을 섞어요!”

“그런 고리타분한 장사로는 이젠 못 사는 세상이 됐단 말이요!”

“남 생각도 내 뱃대지가 불러야 하는 것 아니우!”

세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서로 복장을 두들겼다.

제각각 사람들의 속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장마당을 그득하게 채우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들 넉넉해 보였다. 장마당은 붙박이 상전과 향시를 돌며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들이 임시로 설치해 놓은 가가에 갖가지 상품을 벌여놓거나 노점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노점상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장터는 물목들마다 종류별로 한데 모여 구획을 정하고 각자의 장소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오랜 습속이었다. 보통의 향시에는 부근 마을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뿐이어서 그 수가 일백을 넘지 못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틀어진 난장에는 첫날인데도 사방에서 모여든 장사꾼들과 장꾼들이 뒤엉켜 수백은 족히 됨직했다. 이렇게 모여든 장꾼들은 각자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서로 필요한 물건들과 직접 바꾸느라 장마당은 오랜만에 활기차 있었다.

북진에서 주로 생산되는 물산은 산지 곡물, 임산물, 광산물, 그리고 가내수공업품이었다. 곡물로는 콩이 주종을 이루었고 쌀과 보리는 양식으로 충족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산지가 많은 북진 인근은 임산물과 약초, 광산물이 풍부했다. 산채·연초·대추·송이버섯·석이버섯·잣·자초·복분자·오미자·당귀·질경이·회양목·꿀 같은 물산과 안식향·인삼·복령·산사·사향 같은 약재가 유명했다. 동물은 산양·수달·꿩·흰뱀과 강에서 나는 어물로 누치·쏘가리, 특히 황쏘가리는 특산품 중 특산품이었다. 광산물도 풍부해서 수철·석유황·종유석·옥석·청석·녹반석·활석·주토 등이 생산되었다. 가내수공업품으로는 각종 견포·종이·목기·항아리가 주종을 이뤘다. 또한 북진 인근은 산간지대여서 뽕나무와 삼나무가 많아 견포 생산이 성했다. 비단과 무명 생산은 각지에서 성행했으나 북진 견포는 질이 좋아 경강상인들도 선호하는 물목이었다. 견포는 고급의류여서 양반들이나 궁부에서 특히 수요가 많았다. 따라서 북진에서 생산되는 견포는 경강상인들에 의해 배를 타고 올라가 주로 한양에서 거래되었다. 특히 인근 단양에서 생산되는 먹은 ‘단양오옥’이라 해서 귀한 특산품이었고, 수달 가죽은 중국에서도 자주 요구하는 조공물목 중 하나였다.

경강상인들은 북진에서 구하기 힘든 세공품, 금속, 피물 등 값이 나가는 물건과 서해의 어물과 소금, 새우젓을 싣고 올라와 내려갈 때는 뱃전이 수북하도록 특산품을 맞바꿔 내려갔다. 경상들은 한양에서보다 배는 비싸게 거래되는 물산을 북진에서 팔고, 북진에서 값싸게 매입한 물산을 한양에 싣고 가 비싸게 매각함으로써 몇 배의 차익을 남겼다. 한양은 땔감으로 쓸 나무 한 짐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그야말로 소비중심의 도읍지였다. 따라서 팔도에서 올라가는 물산들이 없으면 한양은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한양에서 가깝고 물길이 통하는 남한강가 고을들은 경상들의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장사꾼들과 고을민들은 그들이 가지고 오는 귀한 물건들과 교환하기 위해 장터로 몰려들어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추 맵다 수산장 / 마늘 좋다 단양장

약초 많다 덕산장 / 생선 좋다 한수장

항아리 좋아 사기리 / 인삼 좋은 대전리

쇠전 크다 제천장 / 양반 많다 청풍장

삼팔장은 청풍장 / 사구장은 덕산장

오십장은 수산장 / 모르겄다 금성장……

 

장바닥에서는 흥겨운 장타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전에서는 흥수가 소와 지게에다 통장작을 잔뜩 실어놓은 채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나리, 이 나무는 생나무가 아니고 작년 가을에 해 놓아 바싹 말라서 솜처럼 가벼워도 화력은 무쇠도 녹일 정도로 괄은 장작이우. 이걸 잡으시면 다른 나뭇짐 세 몫도 넘을 것이니 값이 좀 비싸도 비싼 것이 아니고 나리는 봉을 잡는 셈입죠!”

흥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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