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래서 상한 것을 빼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 넣어 다시 묶고 나니 사백 접도 채 되지 않았다. 이미 이득은커녕 본전에서도 밑이 갔다. 이젠 팔고 싶어도 본전 생각이 나 팔 수가 없었다. 난장이 서면 본전이라도 뽑아 벌충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요행수를 바란 것이 처분을 늦추고 일을 그르치게 된 요인이었다. 난장이 틀어지자 마늘 금은 더 떨어졌다.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는 물산들이 넘쳐나자 마늘은 관심 밖이었고, 마늘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자 당연히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집집마다 갈무리해두었던 서너접 씩의 마늘을 저마다 들고 나와 장마다에는 마늘 풍년이었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장사는 순간의 감정과 욕심이 금물이라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 실수였다.

고추 장사를 하는 수만이와 콩 장사를 하는 만복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역시 난장을 바라보고 고추와 콩을 사두었다가 낭패를 당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거상을 따라갈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었다. 두 사람처럼 자본 규모가 작은 장사꾼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생기면 단기간에 처분을 해야 했다. 수만이는 북진여각처럼 완벽한 창고 시설도 없이 고추를 사서 따뜻한 방에 보관을 하다 나방이가 생겨 낭패를 보게 되었다. 만복이는 좋은 품질만 고집하다 낭패를 본 경우였다. 장사가 물건만 좋다고 반드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만복이는 참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설령 자신이 먹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은 팔지 않았다. 상질의 물산만 고집하다 보니 값이 비싸 꼭 필요로 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찾을 뿐이었다. 거기에다 자본력도 없이 좋은 물건을 확보하려니 물량 또한 소량일 수밖에 없었다. 소경이 봐도 한눈에 탐낼만한 물건이었지만 돈이 되지를 않았다. 더구나 북진여각에서 대량의 물량을 쏟아놓기라도 하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을 판이었다. 이래저래 환장할 노릇이었다.

김창배나 수만이나 만복이나 낙심해서 장사는 뒷전이고 국밥집에 앉아 푸념만 늘어놓고 있었다.

“이놈들아, 욕심이 화여! 그저 밥이나 먹으면 되지, 뭘 더 처먹으려다 먹던 밥사발도 뺏기게 된 것 아녀?”

싸전을 하는 엄갑규였다.

“아저씨는 돈을 많이 벌어놨으니 그런 말 쉽게 하겠지만, 우리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장사도 늘릴 것 아니우?”

“그러니까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게여. 돈을 따라다닌다고 돈이 붙냐?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그것도 아저씨 때 얘기유. 요새 세상은 돈 흐르는 길을 보고 따라가야지, 이전처럼 돈이 오시길 바라다간 하루아침에 쪽박 차기 십상이우.”

“세월이 변한다고 사람 사는 순리도 바뀐다냐?”

장사가 그랬다. 소낙비 내리는 여름 날씨처럼 변화무쌍 했고 겨울날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장사가 잘될 때는 구름 위를 걷는 듯했지만 장사가 안 될 때는 그믐날 밤길처럼 막막했다. 그게 장사 일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사 일이 어렵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죽어라 몸만 굴리면 장사를 그르치는 일은 없었다. 장사꾼들도 큰 욕심은 없었다. 그저 식구들 밥이나 굶기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했고, 몇 년 발품을 팔아 전을 하나 내거나 그렇지 못하면 땅마지기라도 마련해 농사짓는 것을 당연시했다. 싸전 엄갑규가 이야기하는 순리는 그 정도의 장사였다.

그러나 이젠 소박한 순리만으로 장사를 하기에는 예전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엄 씨 시절만 해도 물건도 귀했지만 각자 질 수 있을 정도의 짐만 지고 다니고 가지고 올 정도의 물건만 바꿔서 지고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장사꾼들은 바리바리 물건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 물량을 금으로 치면 웬만한 집의 전 재산보다도 훨씬 웃돌았다. 그 정도 물량이면 시골의 조그만 향시 정도는 떡 주무르듯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싣고 다니며 그들은 장난질을 쳤다.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공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가 우선이었다.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가기도 전에 장사꾼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몸만 불어나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갔을 때는 값이 너무 뛰어올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본래의 장사 목적이 전도된 것이었다. 마늘을 샀다가 낭패를 본 창배나 고추 장수 수민이나 콩 장수 만복이는 새로운 장사 법에 길들여진 신상인들이었다. 그러니 묵묵하게 일만 하다 평생 꿈인 싸전을 차린 엄 씨와 일확천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번에 많은 수익을 얻으려는 요즘 젊은 장사꾼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소통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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