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주막집 마당에서는 앵두갈보의 기둥서방 개돌이와 아들 천구가 악다구니를 벌이고 있었다. 개돌이가 길길이 뛰며 천구를 잡아보려고 용을 썼지만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빠져 다니며 약만 올렸다. 천구는 셋짼지 넷짼지 앵두갈보의 아들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주막집에서 사람들 손을 타며 자란 탓에 약아 빠지기가 기름쟁이 같아서 어지간한 어른 뺨칠 정도였다.

앵두갈보는 원래 북진 상류 쪽에 있는 하진 꽃거리에서 주막을 했었다. 그러다 개돌이를 만나 북진나루로 자리를 옮긴 지는 채 한 해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무슨 장사 수완이 출중한지는 몰라도 이전부터 있었던 주막집들보다도 훨씬 더 남정네들 출입이 빈번했다. 마치 꿀단지에 몰려든 개미떼처럼 뱃꾼들이나 떼꾼들, 장사꾼들이 앵두갈보네 주막집만 드나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앵두갈보는 민며느리로 어느 집에 들어가 죽도록 일만 하다 열다섯이 되기도 전에 신랑 될 사람이 죽어 청상 아닌 청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의 내막은 알 수 없고 주막에서 잔뼈가 굵은 것은 분명하다 했다. 앵두갈보는 청상에다 타고난 몸매로 주막을 드나드는 남정네 치고 군침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차오르는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에 잘룩한 허리, 꺾어질듯 갸냘픈 몸매는 물 찬 제비 뺨을 치고 저고리 사이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젖무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육감적인 몸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꽃단장을 잘해 놓으면 처녀 시집을 가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팽팽했다. 그러니 그녀 곁에는 항상 음흉스런 남정네들의 시선과 군침이 함께 따라다녔다.

“놀다 가면 친구 되고, 자고 가면 낭군 된다요. 못 자고 갈 일 뭐 있겄소?”

앵두갈보는 기둥서방인 개돌이를 옆에 두고도 맘에 드는 남정네만 보면 꼬리를 쳤다. 그러다 반반한 사내만 보면 어떻게든 후려서는 주막집에 주저앉혔다. 앵두갈보도 항상 앵두처럼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있는데다 발정난 암캐처럼 남자만 보면 사족을 못 써 붙여진 별명이었다.

앵두갈보는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는데 제각각 아비가 달랐다. 한순간 뜨내기 사랑이라도 정이 뜨거워 아이들을 낳았을 테니 앵두갈보는 아비들의 얼굴을 기억하겠지만, 아이들은 바람처럼 지나간 애비들의 얼굴을 기억할 리 없었다. 지금의 기둥서방 개돌이도 경강상인을 따라다니던 뱃꾼을 후려 심심풀이로 데리고 사는 것이었다. 그 모양이니 집안이랄 것도 가족이랄 것도 없었다. 어민지, 애빈지, 아들인지 서로 뒤엉켜 그저 곤죽처럼 사는 것이었다. 앵두갈보나 아이들이나 개돌이에게 가족이란 애당초 무의미한 것이었다.

“으이구! 저 숫놈들은 눈깔만 마주치면 쌈질이여. 제발 나도 인덕 좀 보고 살자, 씨발놈들아!”

앵두갈보가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을 향해 퍼지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아침부터 뭔 지랄이랴?”

봉놋방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뒷등이네가 봉당으로 내려섰다. 그 뒤를 여한이댁도 따라 나왔다.

두 사람은 방물장수였다. 뒷등이네는 스무 해가 넘도록 태백산을 넘나들며 장사를 해온 쉰이 넘은 할망구였다. 그러나 평생을 높은 산을 넘으며 다져진 다부진 몸이 웬만한 젊은 아낙 못지않았다. 서른이 채 차기도 전에 과부가 되어 맨몸으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들어선 길이 방물장수였다. 그렇게 발품을 판 덕에 자식들은 모두 장성해 일가를 이뤘다. 그런 자식들만 쳐다보고 있으면 굶어도 흐뭇했다. 머리에 인 보따리가 아무리 무거워도, 종일 걸은 다리가 천근만근 짓눌려 와도 일가를 이뤄 오순도순 살고 있는 자식만 생각하면 이제까지의 모든 고생이 조금도 후회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들어 뒷등이네한테 근심거리가 생겼다. 밖으로 도는 뒷등이네 대신 집에서 살림을 맡아하던 딸년이 가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딸년은 뒷등이네가 장사로 집을 비운 사이에 소금배를 따라다니던 뱃놈과 정분이 나서 집을 나갔다. 그게 벌써 두어 달 전 일이었다. 딸년만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딸년 때문에 낙심을 해서 술만 취하면 ‘그년! 그년!’ 욕을 하며 가슴 앓는 소리를 했다. 장사를 다녀도 예전처럼 힘이 나지 않았다. 팔다리에 힘이 빠져 장사를 건너뛰고 주막에서 쉬는 날이 많아졌다. 간밤에도 주막의 장사꾼들과 어울려 술에 만취해 여한이댁에게 푸념을 해대고 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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