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마흔 고개로 들어서자 갑자기 길이 좁아지며 협곡이 나타났다. 좁은 골짜기 위로 나있는 길은 몹시 비좁으면서 계곡과 잇닿아 있어 한 쪽은 수십 척 낭떠러지로 이어져 있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지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사람들은 짐을 실은 마소들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한 명은 고삐를 잡고, 다른 한 명은 꼬리를 잡은 채 줄줄이 고개를 올라갔다. 숲은 마냥 우거져 대낮인데도 저녁 어스름처럼 침침했다. 그런 길이 산 정상을 향해 끝없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힘겨운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도 쉴 사이도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만 걸었다. 어디 한 군데 엉덩이를 붙이고 잠시라도 쉴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봉화수 일행이 한 차례도 쉬지 못하고 걸은 덕분에 대미산을 넘어 용하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어디서들 오는 거유?”

“문경서 오는 길 아입니꺼!”

“문경유?”

“야!”

“어디를 가는 데유?”

“북진 간다 안합니꺼.”

“문경서 북진을 가려면 새재나 하늘재를 넘지, 저 까풀막진 산을 넘어왔단 말이오?”

용하에서 만난 중늙은이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대미산을 가르치며 어이없어 했다.

“그러게 말이외다.”

영남 장사꾼은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땅바닥에 벌러덩 누우며 말했다.

“우리가 실래바리를 가도 소는 아래다 매어두고 대판서부터는 지게를 지고 겨우 오르는 산길을 나귀와 소를 몰고, 게다가 저 많은 짐을 지고유?”

중늙은이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산짐승이나 나무꾼들이 겨우 뚫고 다니는 깊은 산속 토끼길을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짐 실은 우마가 넘어왔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눈앞에 낯선 사람들과 많은 물산들을 실은 우마들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북진엔 뭣 하러 간다우?”

“스무 여드렛날부터 두 달간이나 북진에 큰 난장이 섭니다.”

봉화수가 중늙은이 말을 받아 대답을 했다.

“그럼, 우리도 이것저것 들고 북진 장구경이나 가봐야겄구먼.”

“뭐든지 들고 오시구려. 이번 장에는 진귀한 물건뿐 아니라 구경거리도 많을 겁니다.”

“지금도 구경이 좋구먼유. 내 평생 용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마소가 들어온 건 첨이구먼유.”

용하마을사람들이 나와 정자나무 밑에 쉬고 있는 봉화수 상단을 구경하며 모두들 신기해 했다.

아침부터 힘든 산길에 모두들 녹초가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했다. 이제부터는 용하계곡을 따라 하설산을 돌아 문수봉을 넘어가야 할 차례였다. 물길을 따라 오르는 계곡길이라 해서 산길보다 쉬운 일도 아니었다. 하설산은 이름 그대로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깊은 산이었다. 실제로도 얼음골이 있어 복날이 되면 얼음을 캐먹으러 마을사람들이 떼를 지어 오르곤 했다. 그런 산에서 흐르는 물이라 한여름 중에도 발을 담그고 있지 못할 정도로 시리고 아렸다. 더구나 이제 추운 기운이 겨우 가시고 청명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삼월이었으니 계곡물은 얼음장 같았다. 물에 젖은 발은 아려서 감각이 없었지만 눈만은 호강이었다. 용하계곡의 풍광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버릴 곳 하나 없는 절경 중 절경이었다. 여인네 속살처럼 흰 바위절벽이 파란 하늘을 향해 찌를 듯 치솟아있고 계곡마다 쏟아지는 폭포, 대패로 깎아놓은 듯한 하얀 반석 위를 흐르는 옥수가 쳐다만 보고 있어도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세 마장이 족히 넘는 계곡을 수없이 가로지르며 험한 산길을 걸어 문수봉을 올라섰을 때 이미 해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오늘 목적지인 도기 가까이 도착을 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오전에 힘을 너무 소진한 탓에 모두들 지쳐 오후에는 계획대로 걷지를 못한 탓이었다. 아직도 도기까지는 두 마장을 더 걸어야 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지라 산중에서 날이라도 어두워지면 큰일이었다. 어두워지면 분간할 수 없는 길도 문제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밤 짐승들이었다. 그렇다고 일행들이 머물 평지 한 평 없으니 멈출 수도 없었다. 이대로 계속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 걷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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