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래서 벌써 황강 송 객주님께 연통을 넣었다. 내일 중으로 우리 애들이 총동원되어 이리로 올 테니 걱정 말고 여기나 잘 지키거라!”

황강패의 우두머리 칼눈이 휘하 무뢰배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이번엔 북진 놈들을 아주 절단 내자!”

“송 객주님도 병상에서 벼르고 있으니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거라!”

황강 패거리들은 지난번 청풍 주막집에서 당한 일을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며 봉화수 일행이 하늘재를 넘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슬이가 미륵리에서 황강 패거리들의 동태를 살피고 다시 문경으로 넘어왔다.

“형님! 아무래도 하늘재를 넘는 것은 위험하겠는 데요. 놈들이 번을 서가며 잠시도 비우지 않고 길목을 지키고 있다우. 그런데다 황강 놈들이 모두 동원되어 미륵리로 올 모양이요. 그래도 하늘재를 넘을 건가요?”

“그럼 다른 방도라도 있느냐?”

“그런 건 아니지만…….”

“하늘재를 넘어갈 거다. 그러니 넌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소문이나 내고 다니거라!”

봉화수는 계속해서 소문을 퍼뜨리게 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선매해서 주막집 마당에 산적해 놓은 물산들을 북진까지 옮길 짐꾼들을 서둘러 모으기 시작했다.

“이 짐들은 청풍 북진여각으로 갈 물산들이오!”

봉화수가 주막집 마당에 모인 짐꾼들에게 말했다.

“너, 청풍이 어딘지 아나?”

“글쎄?”

“내 안다. 수년 전 세곡을 지고 새재를 넘어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지. 여기서 이틀은 족히 걸릴 거다.”

“그래, 품삯은 얼매나 주는 거요?”

“한 사람당 석 전, 소를 몰고 가는 사람에겐 이 전을 더 쳐서 하루 닷 전씩 주겠소.”

짐꾼 한 사람 당 석 전이면 큰 벌이였다. 이틀에 여섯 전이면 쌀이 말가웃이었다. 장정이 뙤약볕에 하루 종일 김을 매도 쌀 두세 되에 불과했다. 인심 후한 집에 일을 가서 서 되를 받아도 일 전 두 푼 밖에 되지 않았으니 하루 품삯 석 전이면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소 품삯도 마찬가지였다. 논갈이나 밭갈이에 빌려줘야 일 전 받기 빠듯한데 석 전이면 횡재였다. 더구나 일소를 몰고 함께 가면 하루 다섯 전이었다.

“내일 식전에 떠나야 하니 짐은 오늘 밤중까지는 모두 실어놔야 할 것이오.”

주막집 마당은 소문을 듣고 몰려든 짐꾼들로 종일 번잡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주막집 앞은 시끌벅적했다. 품삯을 벌기 위해 지게를 지고 나온 짐꾼들과 소를 몰고 나온 사람들, 북진에서 장판을 벌이려고 나귀에 등짐을 지고 나온 보부상과 상인들이 한꺼번에 모여 난장이 이곳에 펼쳐진 듯했다.

드디어 이십여 필의 마소와 오십여 명의 짐꾼들, 보부상과 상인들이 한 무리를 이뤄 북진을 향해 길을 떠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행렬이 일대 장관을 이뤘다. 이 정도면 한양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대규모 상단이었다.

“오슬아, 지금부터 행로를 바꾼다!”

일행이 하늘재와 동로로 가는 갈평리의 갈림길이 가까워지자 봉화수가 말했다.

“어디로요?”

“여우목 고개를 넘어 동로를 지나 대미산과 문수봉을 넘는다.”

봉화수는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로 가는 길 대신 수세골을 지나 관음리 못미처까지 간 후 하늘재 마루 직전에서 바른편으로 길을 돌려 능선을 타고 대미산을 넘어 대판리를 거쳐 용하로 빠질 요량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용하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하설산을 왼쪽으로 끼고 골짜기를 타고 넘으면 문수봉 자락 밑 양주동이었다. 백두대간의 허리를 이루고 있는 대미산과 문수봉만 넘으면 도기부터는 마소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그런대로 나 있었다. 양주동과 도기는 지척이었다. 오늘은 민가가 있는 도기까지만 갈 계획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도기리와 대전리를 거쳐 수리천을 따라 구담봉 앞 장회나루로 빠질 생각이었다. 다만 관음리에서 대미산을 넘는 것과 용하에서 양주동으로 가기 위해 문수봉을 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두 산은 워낙에 큰 산이기도 했지만 산세가 험해 빈 몸으로도 넘기 힘든 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형님, 하늘재를 넘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황강 놈들의 허를 찌르는 거다.”

“형님! 제 정신이요?”

오슬이조차도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띵한 표정으로 봉화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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