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홍 선주, 이 일은 목계 상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히 해야 할 것이오!”

“염려 놓으시오.”

“그럼 나는 홍 선주만 믿소!”

최풍원이 다시 한번 홍만경에게 다짐을 받았다.

“염려 마시오!”

“만약 배신하면 북진난장은 틀어지오. 그렇게 되면 나도 당신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오!”

최풍원이 엄포를 쳤다.

“그럴 리 없소!”

홍만경이가 잘라 말했다.

“홍 선주! 오늘은 우리가 처음 거래를 튼 날이니 내가 거하게 한 잔 내리다. 그리고 홍 선주, 지금 기별이 닿을 수 있는 경상들에게 연통을 넣어 이 배로 오라 하면 안 되겠소?”

“좋소이다!”

“강수야, 아이들 데리고 주막으로 가 한 상 차려 오너라! 주막집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서 가져오너라!”

“예, 대행수님!”

최풍원의 말에 강수가 동몽회원들을 데리고 주막으로 달려가고, 홍만경 선주와 선이 닿는 경강상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홍 선주의 뱃꾼들이 잰걸음으로 객주집 쪽으로 흩어졌다.

사방이 캄캄했지만 강을 따라 기슭으로는 집집마다 커놓은 불빛이 즐비하게 이어졌다. 배의 돛대에 걸어놓은 현등이 강바람에 간간히 흔들거렸다. 모두 사람들을 상대하는 장사집이었다. 남한강 최대 하항답게 목계는 역시 큰 장이었다. 그렇지만 목계가 지금처럼 커진 것도 불과 십수 년 안팎이었다. 목계가 이처럼 커진 것은 지리적 요인이 컸지만 그 못지않게 목계장을 키운 것은 이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장사꾼들이었다. 사농공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천대받으면 살아왔던 상인들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이전과는 달라진 세태가 큰 몫을 했다. 한양과 팔도의 큰 장에서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상인들이 점차 영역을 넓혀나가자 각 지역의 물산들이 활발하게 교류되었고 이에 따라 일반 농민들도 자기들이 생산하여 먹고 남은 잉여 물건들을 장으로 가지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의 목계시장을 키운 원동력이었다. 최풍원도 하루빨리 북진을 목계처럼 만들고 싶었다. 실은 목계보다 더 큰, 그래서 사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그런 북진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니, 최 대주 아니신가?”

최풍원이 홍만경의 배 위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지며 배로 오르는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최풍원을 아는 체 했다. 어둠 속이라 어슴푸레하게 얼굴 윤과만 보였지만 목소리만은 어디에선가 들은 적 있어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칠패장 유필주 어르신 아닙니까?”

걸어놓은 현등 밑으로 가까워지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최풍원이 반갑게 맞이했다.

“최 대주 섭섭하외다! 여기까지 왔으면 날 먼저 찾아야지 어째 홍 선주부터 찾았단 말이오? 섭섭하오!”

한양 칠패장에서 큰 장사를 하는 유필주였다. 최풍원이 공납물품을 받아 윤왕구 객주와 함께 한양에 올라갔다가 만났던 상인이었다. 그때 최풍원은 유필주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까지 받았었다.

“저는 어르신 생각은 꿈에도 못했고, 충주 윤 객주님으로부터 여기 홍 선주만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간 무고하셨는가요?”

최풍원이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듣자니 북진에서 장을 연다고 하던데 그 일로 예까지 내려왔는가?”

“역시 한양 큰 상인들은 못 당하겠습니다.”

“장사꾼이 눈과 귀로 사는 법인데 그런 큰일이 꾸며지는 걸 어째 모를 수 있단 말이오? 나도 북진장에 물건들을 잔뜩 싣고 가겠소이다!”

“어르신께서 그리 해준다면 천군만마가 부럽겠소이까?”

장이라는 것이 당장 먹고 입을꺼리를 해결하는 것이 주였지만 눈요기꺼리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다양한 물품을 가지고 있는 유필주가 북진에 올라온다면 장은 훨씬 더 풍성해질 터였다.

“내가 다른 장사꾼들도 몰고 가겠소이다!”

그날 밤, 홍만경의 배 위에서는 이슥하도록 술판이 벌어졌다. 유필주 뿐만 아니라 홍 선주와 교분을 가지고 있는 경강상인들도 함께 자리를 했다. 판로가 막혀 전전긍긍하던 경강상인들에게 최풍원은 구세주였다. 최풍원은 그들이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미끼를 던지고 회유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내 몸에 혀처럼 믿을 수는 없었다. 장사꾼들의 생리가 그러했다. 아침에 한 굳은 맹세도 이익이 생기는 일이라면 저녁에 깰 수 있는 것이 장사꾼들의 세계였다. 최풍원은 그날부터 목계에 머물며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경강상인들의 동태를 살피는 동시에 수천이에게 목계장의 동향과 시장 조사를 시켰다. 최풍원이 일련의 일들을 끝내고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것은 사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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