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황공하여이다.”

최풍원이 너무나 감격하여 잔을 바로 받지 못했다.

“최 행수! 용궁에 다녀온 기분이 어떤가?”

형방 김개동이가 최풍원을 놀리자 좌중이 일시에 와르르 웃음바다로 변했다. 분위기는 오히려 어색하던 초장보다도 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자정이 되도록 버드나무집 안채에 있는 내실에서는 기녀들의 간드러진 노랫가락과 사내들의 취기 섞인 목소리와 음흉한 짓거리가 계속되었다.

“부사 영감은 지가 적적하지 않게 모시겠습니다요.”

모두들 거나해지자 최풍원이 은밀하게 부사 이현로에게 말했다.

“허-어엄!”

부사 이현로도 많이 취해 있었지만 꼿꼿한 자세는 잃지 않고 있었다. 최풍원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척 헛기침만 했다.

“부사 영감의 선처만 바랄 뿐이옵니다.”

이현로의 낯빛을 살피며 최풍원의 아부는 끝이 없었다. 부사 이현로도 이젠 그만 그 분위기에 녹아 허허거리기만 했다.

“어험, 이젠 그만 일어나야겄네.”

이현로가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여보게, 영모!”

최풍원이 밖을 향해 큰소리로 버드나무집 여주인을 불렀다.

“왜 그러시어요?”

영모가 진탕 술판이 벌어진 내실문을 역고 들어왔다.

“부사 영감 가신다네. 자네가 오늘 특별히 모셔야 할 걸세!”

최풍원이 영모에게 단단히 일렀다.

술을 마시고 있거나 수작을 걸거나 흥얼흥얼 취흥에 빠져있던 아전들과 기녀들이 어수선하게 일어서 이현로를 배웅했다. 부사 이현로가 영모를 따라 안채를 돌아 후원으로 사라졌다. 이현로가 자리를 뜬 후에도 술자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부사가 뜬 술자리는 아예 오래된 친구들이 모인 자리처럼 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사야 임기가 끝나면 매번 바뀌는 자리였지만, 아전들이나 최풍원은 벌써 수십 년을 다져온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다. 그러니 격식 따위를 차리고 할 필요조차 없었다.

“최 행수, 우리 신임부사 영감의 서릿발이 어떻던가?”

형방 김개동이 기녀의 저고리 속에 한 손을 집어넣은 채 놀리듯 물었다.

“우리 같은 상놈들은 양반님네들 호령에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죽은 척 하는 것이 상책 아니겠습니까? 형방 나으리!”

“그래도 오늘은 자네가 잘못한 걸세. 주고받더라도 체면을 지켜가며 해야지. 이제 막 내려와 물정을 모르는 영감에게 다짜고짜 장사치 흥정하듯 했으니, 대궐에서 한직으로 내려온 것도 못마땅한 지경에 상것 중에도 상것인 장사꾼이 흥정을 하려고 대들었으니 양반 체모에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글쎄 말입니다. 이제 최풍원이도 다 됐나 봅니다.”

“서서히 약을 쓰게.”

“약은 지가 칠 터이니, 이번에 트는 난장 모든 권리를 주시오!”

“무슨 권리?”

“독점권이지 뭘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목계나 경상들이 직접 물산들을 풀 수 없게  도가를 통해서만 매매할 수 있게 해주시고, 쌀 전매권을 행할 수 있게 곡식바리를 감독하는 말감고 자리, 잠상 단속권과 난전을 펴는 떠돌이 장사꾼들에게 장세를 받게 해주시면 될 일이지요.”

“아주 원을 자네가 하게나. 무슨 요구조건이 그리도 많은가?”

“가짓수만 많아 보이지 결국 한 가지 아니겠습니까요. 난장의 모든 운영권을 지게 넘겨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자네는 무엇으로 보답을 하겠는가?”

아전들의 본심은 거기에 있었다. 부사 이현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풍원이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죽는 시늉은 했지만 이미 부사 이현로와 아전들의 내심을 간단없이 꿰뚫고 있었다. 이현로는 어떻게 하든 하루라도 빨리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양의 대궐로 입성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적을 한양으로 알려야 했다. 비록 아전들이 신임부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벌인 일이기는 했지만 청풍 땅으로 부임해 오자마자 고을 사람들의 이름으로 팔영루 앞 인적의 왕래가 빈번한 거리에 자신의 공덕비를 세웠다. 본래 공덕비는 부사가 원을 떠날 때 그동안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백성들이 스스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부임하자마자 공덕비를 세운 것은 신임부사들 마음을 얻어 아전들이 부사를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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