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 대행수는 이미 강을 건너와 버드나무집 대문 앞에서 부사 일행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신임 청풍부사 이현로가 아전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최풍원과 수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소서, 부사 영감!”

최풍원이 정중하게 하례를 올렸다.

“…….”

“최 행수! 준비는 자알 됐겠지?”

부사 이현로는 인사도 받지 않고 앞을 지나갔고 뒤따르던 형방이 최풍원을 보며 은밀한 눈길로 부사 대신 하대를 했다.

하기야 한 고을의 원이 일개 장사치와 그것도 남들의 이목이 있는 길가에 서서 수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연히 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부사보다도 더 거드름을 피우며 행세를 하는 것들은 뒤따르는 아전들이었다. 세상 이치가 그러했다. 주인이 ‘에헴’ 하면 종놈은 한 술 더 떠 ‘어험’ 하고, 주인이 뺨을 치면 종놈은 몽둥이찜질을 하는 것이 세태였다. 최풍원은 그런 부사와 아전들의 거드름을 보며 겉으로는 쩔쩔매는 척 몸을 낮추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술수일 뿐이었다. 오히려 속으로는 누구나 한결같은 관리들의 거드름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겉모습이야 위풍당당했지만 옷꺼풀을 벗기고 속을 들여다 보면 갖은 속내가 드러났다. 이제껏 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로 세월을 보낸 최풍원이 상대해 온 부사만 해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거나 부사 얼굴이 바뀌어도 어쩌면 그렇게도 양반들 허세는 일색인지 참으로 신기할 뿐이었다. 하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부사 일행의 뒤를 따라 최풍원과 수하들이 버드나무집 안마당으로 들자 여주인 영모와 기녀들이 줄줄이 서서 부사 일행을 환대했다.

“영모, 자넨 뭐 하러 나왔는가? 이쁜 꽃이 이렇게 지천으로 널렸는데.”

줄줄이 서 있는 기녀들 앞에서 환대를 하며 서 있던 버드나무집 여주인 영모를 보며 아전들이 놀렸다.

“그러시오면 저 같은 꽃은 어찌하라고 그러시옵니까?”

“누가 자넬 아직도 꽃으로 대해주는감?”

“나으리, 막 지는 꽃이 더 애처롭지 않사옵니까?”

“눈깔이 뒷통수에 붙은 놈이 아니거나 제 정신이 아닌 놈이 아니라면 씨가 떨어져 피고 져도 숫해 거듭했을 터에 누가 자넬 막 지는 꽃이라 하는가?”

“나으리는 모르시는 말씀이오. 배동이야 어디 씹는 맛이 있사옵니까? 고기 맛은 늙은 게 씹을수록 맛이 나지요.”

“그럼, 오늘 늙은 고기 맛을 한번 볼 수 있으려나?”

“치아는 탄탄하신지요?”

“이만 탄탄하면 아무나 먹을 수 있는가?”

“퇴기라고 아무한테나 헤프지는 않사옵니다.”

“그럼, 어찌하면 되겠는가?”

“사정을 해보시어요.”

“질긴 고기를 먹으려면 사정을 하라…….”

아전들과 영모가 농말을 나누며 지체하자 부사 이현로가 상스럽다는 듯 외면을 하며 헛기침을 했다.

“아이고, 얘들아! 부사 영감을 안으로 뫼시어라.”

수다를 떨던 영모가 부사 기침 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제야 수선을 피웠다. 영모의 호들갑에 기녀들이 요분질을 치며 내실로 앞장섰다.

“너희들은 내가 따로 명이 있을 때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 있거라.”

최풍원이 수하들을 돌아다보며 일렀다. 수하들이 안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최풍원은 연회가 베풀어질 내실로 들어갔다.

“부사 영감, 지가 북진여각 최풍원이옵니다. 제 절을 받으시오소서.”

최풍원이 상석에 앉아있는 이현로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허엄.”

최풍원이 큰절을 올려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낮게 헛기침만 했다.

이미 아전들로부터 최풍원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대를 하는 것은 이현로의 자존심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북진여각의 수장인 대행수라고 해도 상민이나 다름없는 장사치와 합석을 한다는 것이 못내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산골에서 고을 원이나 할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불만스러울 뿐이었다. 어떻게든 청풍에서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보란 듯이 입성을 해야만 떠나올 때의 수모를 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풍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현로가 아니었지만 이제껏 격조 있던 한양생활에서 벗어나 하루아침에 시골 부사로 내려와 상것과 어울린다는 것에 쉽게 동화될 리 없었다. 최풍원 또한 이현로의 거드름에 과히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누구든 신임 부사로 내려오면 막대기처럼 꼿꼿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위엄도 봄눈 녹듯 흐물거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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