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서창벼루를 돌아서자 왼편 산자락 아래로 한수가 나타났다. 나루터 위쪽으로는 퇴락한 한수재도 보였다. 배가 한수 앞 강을 스치듯 지나자 곧바로 황강나루와 마을이 보였다. 그 순간 봉화수는 황강객주 송만중의 고통에 찬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거룻배는 황강마을을 미끄러지듯 지나 찬샘마을에 다다르자 왼편으로 뱃머리를 돌리며 남한강 큰물줄기를 벗어나 월악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역리를 지나 복평 바로 아래 북노리에서 봉화수 일행이 탄 배는 더 이상 오르지를 못하고 뱃머리를 물가에 댔다. 봄 가뭄 때문에 수량이 줄어 강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눈앞에는 우람한 월악산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하늘을 향해 우뚝하게 솟아 있었다.

“형님, 꼭 그거같이 생기지 않았쑤?”

배에서 내린 오슬이가 성기처럼 불끈 솟은 월악산 영봉 바위산을 가리키며 히히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서둘러라!”

봉화수가 실없이 웃는 오슬이를 나무라며 서둘 것을 재촉했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신라 마의태자라는 사람이 언젠가 저 월악산 영봉이 강물에 비치는 날이 온다고 했단다. 그날이 되면 잃어버린 신라를 되찾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기고 금강산으로 떠났다는구나.”

“이런 산골짜기에 저 큰 산이 무슨 수로 강물에 비치겠어요? 어림도 없는 얘기지.”

하기야 오슬이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지개벽을 해도 이 깊은 산골짜기에 물이 가득 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봉화수도 예전부터 들어온 월악 영봉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슬이 말처럼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잘들 댕겨 오시구려.”

봉화수 일행들이 당나귀와 소를 모두 거룻배에서 끌어내리고 송계계곡으로 들어설 차비를 마치자 삿대로 배를 강심으로 돌리며 도사공이 손을 흔들었다. 최풍원 일행도 강가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자, 서두르자!”

배가 멀어져가자 봉화수가 일행들을 재촉했다.

하늘재를 넘을 봉화수 일행은 돈 짐을 실은 당나귀와 길마를 지운 짐소, 마소를 부릴 장정 여섯과 오슬이, 그리고 봉화수 이렇게 여덟이었다. 북노리를 출발한 일행은 질마재를 넘어 탄지리로 가 복평으로 가기로 했다. 길을 따라 역리로 돌면 길은 편했지만 거리는 배나 멀었기 때문이었다. 질마재를 넘어 덕산에서 내려오는 성천과 월악에서 내려오는 월악천이 만나는 합수머리가 있는 복평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험한 길만 남아 있었다. 계곡을 가로질러 물을 수없이 건너야 하고 물가로 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거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창을 지나고 덕주산성 북문을 통해 송계 팔경 중의 하나인 자연대가 있는 덕주골에 당도해서야 때늦은 허기를 채웠다. 허물어진 성처럼 모두들 기진맥진이었다. 계곡마다 펼쳐지는 선경을 즐길 잠시의 여유도 없이 걸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오늘 중으로 하늘재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지체되다가는 해가 지기 전 미륵리까지 가는 것도 빠듯했다. 망폭대·덕주산성 남문을 지나 팔랑소·닷돈재를 넘어 하늘재 아래 미륵리에 도착한 것은 어둑어둑한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이 되어서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하늘재 밑 미륵리에서 묵고 내일 아침 일찍 하늘재를 넘어야 할 듯싶었다. 하룻길로 북진에서 하늘재를 넘는다는 것은 애당초 버거운 일이었다. 아침나절 서창객주 황칠규의 집에서 지체를 했고, 강에 물이 말라 북노리에서 질마재를 넘어 복평까지 걸어 마소와 함께 무거운 돈 짐을 싣고 미륵리까지 당도한 것만도 서둘지 않았으면 힘든 일이었다. 하늘재 밑 미륵리 안말에 도착했을 때는 일행은 이미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었다.

“형님,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일찍 재를 넘어야할 것 같은데요. 너무들 지쳤습니다.”

오슬이가 말했다.

“알았다. 이제부턴 각별히 입조심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북진여각 최풍원의 여각에서 왔다던가, 경상도 물산을 매입하기 위해 하늘재를 넘어갈 것이라던가, 북진에서 난장을 펼친다던가 하는 일체의 얘기는 입도 뻥긋 하지 말거라. 주막집에는 별의별 놈들이 다 모여 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봉화수가 미륵리 주막집으로 들어가기 전 일행들에게 입단속을 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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