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염려 말게!”

황칠규는 자신만만하게 장담을 했지만 봉화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제의 일로 혼구멍이 났겠지만 워낙에 수단이 좋은 송만중이라 몸을 추스리면 또 어떤 모사를 꾸밀지 모를 일이었다. 술수를 부리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꼬리가 아홉 개 달린 불여우도 당해내지 못할 송만중이었다. 송만중의 갖은 술수를 마음만 좋은 황칠규가 당해낼 수 있을런지 봉화수는 그것이 걱정되어 거듭 당부를 했다.

“형님, 장사 얘기는 그만 두고 요기나 하십시다!”

오슬이가 부엌에서 두리반을 들고 나오며 소리쳤다.

당분간 거동이 힘들겠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송만중이 아니었다. 생각 같아서는 황강장에 숨어들어 송만중의 동태를 살펴보고 하늘재를 넘어야 찜찜함이 덜할 것 같았지만 위험하기도 했고 그것 못지않게 우선 영남에서 넘어오는 경상도 장사꾼들의 물건을 선점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봉화수 일행이 서창객주 황칠규의 집에서 요기를 하고 나루터로 나오니 아침 햇살이 사방에 퍼진 후였다. 퍼진 햇살에 안개가 말라 걷히고 파란 강물은 호수처럼 판판하게 펼쳐져 있었다.

“오늘 마빡께나 삐껴지겄네!”

조사공이 말간 하늘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사공, 보뜰까진 얼마나 걸리겠수?”

“그걸 낸들 어찌 알겄남. 바람하고 물만이 아는 일을.”

오슬이의 물음에 도사공이 태평하게 말했다.

서창나루를 떠난 배가 남한강 물길을 따라 기분 좋게 흐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마신 탁배기에 거나해진 도사공은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뱃노래를 흥얼거렸다. 봉화수 일행이 탄 배 곁으로 뗏목 여러 바닥이 내려오고 있었다.

“여보슈, 뗏사공! 어디서 내려오는 길이우!”

도사공이 거룻배 곁으로 길게 줄지어 내려오는 떼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용진이요!”

물길을 따라 뱀처럼 길게 늘어진 뗏목의 방향을 잡느라 쉴 사이 없이 그레질을 하며 떼꾼이 소리쳐 대답했다.

“어디로 가는 떼가 그리 많소!”

“광주 분원 가마로 가는 떼요.”

열 바닥은 됨직한 떼가 강 한 편을 온통 통나무로 덮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웃짐도 많이 실었구려!”

“그래야 탁주값이라도 가외로 생기지유.”

웃짐은 뗏목 위에 실은 나뭇짐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무 주인인 목상들은 웃짐을 엄하게 금했지만 떼꾼들은 주인들 몰래 나뭇짐을 실고는 내려가는 길에 그것을 팔아 주막집에서 술과 음식으로 바꿔 먹었다.

“조심해서 가시우!”

“고맙수!”

떼꾼이 도사공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저 가운데 떼쟁이는 초자요. 떼가 흘러가는 꽁대기만 봐도 단박 알 수 있소.”

“그걸 도사공이 어찌 아십니까?”

“평생 물 위에서 살았는데 뭐는 안 해 봤겠수. 지금쯤 용진나루에는 태백산에서 벌채되어 동강과 서강을 타고 내려온 골안 뗏목과 벌채된 재목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통나무를 옮기는 동발꾼과 떼를 매는 뗏매기꾼, 떼꾼들이 뒤엉켜 밤낮없이 흥청거리고 있을 거요. 나도 젊어 한때는 떼를 타고 마포나루까지 숩시 댕겼지.”

“돈도 많이 벌었겠습니다?”

“많이 벌었지요. 종일 일해야 품값으로 보리쌀 한 되 받기도 어려울 때 떼를 몰고 한양을 한 번 갔다 오면 쌀 한 가마 값을 공가로 받았응께 큰돈이지. 그때만 해도 옛날이지!”

“그 돈을 다 뭐 했수?”

“그때는 돈이 돈같이 보이지를 않더라구요. 목숨을 내놓고 번 돈인데도, 또 한 번 갔다 오면 되지 하고 흥청망청 써버렸지.”

“갈보들 하고 정분도 나봤겠수?”

오슬이가 귀를 세우고 도사공 이야기에 군침을 흘렸다.

“술도 먹고 갈보들과 어울리다보니 꽃값으로 빨리고…….”

“좋았겠소이다!”

“먹고 놀 땐 좋았지. 그러다 보면 집으로 올 때는 손에 쥔 게 별반 없었지.”

“그래도 그렇게 놀아봤으니 원은 없겠슈?”

“물질이 힘들기도 하고 외로우니까 많이들 하지. 어떤 떼꾼들은 아예 살림을 차려주구 제집처럼 드나들었지. 영춘 용진이나 단양 꽃거리, 목계나루에는 썩쟁이들도 참 많았지.”

도사공은 그 시절이 그리운지 눈을 지긋하게 감은 채 노를 저으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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