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형님, 식전부터 물길에 시달렸더니 속도 울렁거리고 한데 좀 쉬었다 가십시다. 어차피 오늘 하늘재까지만 가면 되잖습니까?”

이번 길에 동행하는 동몽회 서리 오슬이가 봉화수에게 매달렸다.

“오늘 중으로 하늘재를 넘어야 한다.”

“예? 그건 빈 몸으로 가기도 힘든 거립니다. 더구나 저렇게 짐을 가지고…….”

오슬이는 사람이 가볍기는 했지만 남한강 일대 마을과 산길은 물론 숲속에 숨어있는 나뭇길이나 샛길까지도 훤하게 알고 있는 지리에 능통한 녀석이었다. 이번 길에 봉화수가 오슬이를 데리고 나선 것도 녀석의 빠른 발과 손금 보듯 환하게 꿰고 있는 길눈 때문이었다.

“그렇게 합시다요. 여울하고 한참 씨름을 했더니 목이 컬컬해서 그냥은 못가겠구려.”

도사공이 주막집 쪽을 바라보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도상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조사공이 잠뱅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며 풍덩 강가 물로 뛰어내렸다.

“이눔아, 배 떠내려가지 않게 단단히 챙겨!”

조사공이 뱃줄을 당기며 뱃머리를 강가 모래밭으로 바짝 대자 도사공이 배에서 내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하슈! 그놈의 잔소리는…….”

말끝마다 질러대는 호통 소리에 조사공은 잔뜩 볼멘소리를 했다.

“오슬아, 주막집에서 간단히 요기나 하고 떠나자.”

갈 길이 먼 봉화수는 애가 닳았지만 혼자만 길을 갈 수는 없었다.

“뭔 소리여? 내 마을에 온 손님을 주막으로 모실 수야 있나.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세!”

배에서 내린 일행들이 서창 주막거리로 발길을 돌리려하자 황칠규가 극구 말리며 자신의 집으로 갈 것을 권했다. 봉화수가 머뭇거렸지만 이미 황칠규는 저만치 앞서 소를 끌며 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봉화수와 일행들도 그 뒤를 따랐다.

“저기 주막거리를 지나 지소거리로 해서 쇠시리재와 꼬부랑재를 넘으면 시루미가 나오고 거기서 오 마장쯤 더 가면 보뜰인데 그 길로 가면 어떻겠나?”

황 객주가 봉화수에게 육로를 택하면 어떻겠느냐는 의향을 물었다. 보뜰은 복평을 인근 사람들이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목적지가 보뜰이면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오늘 중으로 하늘재를 넘으려면 초반부터 고갯길을 택해 힘을 빼면 힘들 듯한데요, 형님?”

봉화수 대신 오슬이가 황 객주 물음에 답하며 봉화수를 바라보았다.

“처음대로 보뜰까지는 배로 가는 것이 좋겠다.”

봉화수도 될 수 있는 한 육로를 피하고 뱃길로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더구나 다섯 마리나 되는 나귀의 길마에는 일백 관이나 되는 돈이 잔뜩 실려 있어 그 무거운 돈을 가지고 아침부터 재를 두 개나 넘어 산길을 간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나귀에게도 무리한 일이었다. 동전이 일백 관이면 냥으로 치면 일천 냥이요, 전으로 치면 일만 전이고, 푼으로 치면 십만 푼이었다. 상평통보 한 개가 일 푼이니 그 무게만도 장정 서너 명과 맞먹는 것이었다. 쌀 한 섬이 네 닷 냥이니, 상평통보 일백관이면 쌀은 이백 섬, 콩은 육백 섬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서창객주 황칠규의 집은 세곡을 쌓아두는 창집을 지나 역이 있는 관행 길가에 있었다. 비록 초가이기는 했지만 널찍한 마당과 목재로 골격을 맞춘 집이 짜임새가 있어 보였다.

“여봐, 임자! 어디 있는 게야?”

황 객주가 거드름을 피우며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왁자한 소리에 놀란 황 객주 마누라가 뒷곁에서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왔다.

“어여, 요기 좀 차려!”

황 객주 마누라가 쏜살같이 부엌으로 들어가고 일행들은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 객주 집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물이 낫처럼 꺾이며 북서쪽으로 물길을 틀고, 강 가장자리에 있는 윗섬과 아랫섬에 펼쳐진 모래벌판이 반짝반짝 빛났다. 햇빛이 내려쬐기 시작하자 강에 깔려있던 물안개도 서서히 걷히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남한강 물빛이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남한강은 언제나 봐도 늘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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