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윤 청주랜드관리사업소 관리팀장]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영화 ‘동물, 원’이 오는 5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주인공은 청주동물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정호 수의사, 날마다 맹수사장에 들러 먹이를 주고, 분비물을 치우면서 호랑이의 상태를 관찰하는 전은구 사육사, 야생동물은 야생에 살아야 마땅하지만 정해진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겠다고 하는 권혁범 사육사, “그냥 동물이 좋아서요” 하면서 수줍게 웃고 있는 박영식 사육사 후보, 동물 먹이로 줄 생닭 치는 연습을 하고 가파른 언덕을 날마다 몇 번씩 오르기 위해 스쿠터를 먼저 배우는 김혜민 사육사 후보이다. 모두 청주동물원의 직원들이다.

그리고 항공박람회가 열렸던 해 태어나 ‘박람’이라 이름 지어진, 20여 년을 청주동물원에서 시민과 만나다 지난해 죽음을 맞은 호랑이 ‘박람이’도 주인공이다.

또 태어나서 제대로 수영을 못해 직원들을 교대로 24시간 벌서게 했던, 먹이라도 제대로 먹을 줄 알면 좋을 텐데 낚시까지 하면서 먹는 걸 가르쳐줘야 했던 물범이 녀석도 주인공이다. 물범 새끼 ‘초롱이’를 지켜주면서 몇 분 동안 엉덩이만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데 신용묵 수의사이다. ‘총잡이’다. 호랑이에게 마취총을 쏘는.

김정호 수의사에게 붙들려 정자를 채취당하는 걸 만천하에 공개해야만 하는 삵도 진짜 주인공이다.

두루미 성(性) 감별을 위해 채혈을 해야 하는데 윤지호 사육사는 두루미를 꽉 붙들고 있지 못해 놓쳐버려서 신용묵 수의사에게 타박을 받았다. 장상기 사육사는 앵무새를 어깨에 올리고 시종일관 우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우리들은 웃고 아이들은 좋아했다.

청주동물원에 계절이 바뀌었다. 꽃이 피면 관람객이 많이 찾아와줘 고맙고 눈이 내리면 아름답긴 한데 비탈길이 많아 위험하다. 무서운 것은 호랑이 같은 맹수가 아니라 몰래 신발 속에 숨어 있다 독침을 쏘는 지네 녀석이다. 윤지호 사육사는 지네에 물렸다가 오히려 또 혼났다.

“작업화를 신을 땐 신발 속을 잘 보고 신어야지!”

이 장면은 영화엔 없지만 우리는 걱정하면서 웃고 윤지호 사육사는 아팠던 ‘웃픈’ 사연이 담겼다.

날지 못하는 독수리 ‘청주’가 야생동물센터에 가면서 방사훈련을 받고 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정호 수의사는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섬뜩한 스릴도 없고 가슴 설레는 연애사도 없다.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중대한 역사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물원에서는 매일이 사건이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지만 야생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주인공들은 날이 밝으면 사람들을 만나고 해가 지면 큰 산 적막한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다.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평원을 그리워하는 걸까. 날아보지 못한 창공을 그리워하는 걸까.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이 시대, 주인공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날렵한 경쟁 사회에서 전정한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영화 ‘동물, 원’ 앞에서.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