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래, 생선은 다 팔았는고?”

“예.”

“팔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다 팔았는고?”

“주막집들을 돌며 팔았구먼요.”

“어디 자리를 깔고 판 게 아니고 돌아다니며 팔았다고? 그래, 술꾼들이 잘 사는가?”

“술 한 사발 덜 자시고 이 자반을 사가면 애들도 좋아하고 아주머니도 달라질 거라고 했더니 술김에 너도나도 금방 동이 나버렸구먼요.”

최풍원은 봉화수의 모습을 찬찬하게 뜯어보았다. 보통 생선장수라 하면 장바닥에 쭈그리고 않아 팔거나 지고이고 집을 찾아다니며 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봉화수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수완으로 생선을 판 것이었다. 술을 먹으면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단순해지고 후해졌다. 돈을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에도 술만 먹으면 어느 줄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봉화수는 술꾼들의 그런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내 밑에 와 장사를 배워보지 않겠는고?”

최풍원은 그런 봉화수가 탐이 났다.

“안 되는구먼요!”

봉화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왜?”

“올 농사가 이제 시작인데 그것도 마쳐야 하고, 더구나…….”

봉화수는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말꼬리를 흘렸다.

봉화수네 집은 대대로 남의 땅을 부쳐먹고 사는 대물림 소작인이었다. 꼴 심부름을 겨우 할 정도의 어린 나이부터 봉화수는 교리 권 씨 댁에서 머슴을 살았다. 홍문관에서 교리 벼슬을 하다 교리로 낙향한 권 교리는 참 선비였다. 봉화수가 권 교리댁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된 것은 가솔들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남의 소작을 부치며 근근이 살면서도 투전에 미쳐 집안 살림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가을이 되어 나락을 거둬들이면 소작료를 내고 새똥만큼 남은 양식을 들고 나가 식구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노름판을 전전했다. 하루아침 땟거리도 되지 않는 밑천으로 투전판을 전전하니 노름빚만 늘어났고, 결국 아버지는 어린 아들까지 애기머슴으로 팔아 넘겼다. 아버지는 낳기만 했을 뿐 가장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린 봉화수의 세경까지 미리 잡아다 쓰는 그런 위인이었다. 급기야 역말이 있는 주막거리 황심보의 고리채까지 빌려 썼지만 갚을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피눈물도 없는 지독한 황심보의 고리대금을 쓰고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아버지는 야반도주를 했고, 대신 어머니가 황 심보네 집으로 잡혀갔다. 황 심보 집에서 돌아온 날부터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한 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굶다가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봉화수의 나이 열두 살 되던 해 이맘 때 쯤이였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린 봉화수는 시신만 붙들고 통곡만 할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처럼 시절이 평안했던 것 같으면 일가나 이웃들이라도 도와주었겠지만, 워낙사람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체면이나 인정보다도 우선 당장 자신들의 입 하나 꺼나가기에도 급급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백부 또한 모른 척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가난 때문이었다. 그때의 막막함과 서운함을 생각하며 봉화수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유학이 땅에 떨어지고 세상인심이 흉흉해졌다 하나, 곤궁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구휼하는 것이 사람 도리이거늘 어찌 세상인심이 이리도 야박한고!”

모두들 남 일처럼 모른 척 하던 그때, 봉화수를 도와준 은인이 권 교리 어른이었다. 집안 머슴들을 데리고 와 어머니의 묏자리까지 내주며 장사를 지낼 수 있게 해준 평생 은인이었다. 아무리 머슴살이가 힘에 겹고 고통스러워도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러준 권 교리 어른의 은공을 생각하면 뼈가 다 닳아지도록 갚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내가 그 어른께 청을 넣어 볼테니, 응낙하면 내 밑으로 오겠느냐?”

“…….”

최풍원이 재차 물었지만 어린 봉화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것보다야 장사가 어느 모로 보아도 백 번 나을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남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그것을 저버린다는 것은 짐승이나 할 짓이었다.

“저는 그 어른의 은공을 갚아야 하는구먼요. 그 어른이 저를 버리기 전에는 제 발로 나올 수 없구먼요!”

“알았구나. 내, 청을 한번 넣어보마!”

최풍원은 어린 봉화수의 마음 씀씀이와 올곧게 박혀있는 심지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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