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윤 교수의 창] 신뢰사회
[박홍윤 교수의 창] 신뢰사회
  • 충청매일
  • 승인 2019.08.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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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육협의회(IEA)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조사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고 한다. 그 조사가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결과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청소년이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응답은 39.7%에 불과하다. 유아원과 유치원 그리고 부모가 아이들에게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것이 유괴에 대처하기 위해 낯선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또한 우리의 교육제도는 선생과 학생 간에 신뢰를 형성하기보다는 맥그리거가 주장하는 X형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여 신뢰관계를 부정하는 제도를 선호하고 있다.

조사는 우리 청소년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44,8%만 긍정적으로 응답하여 매우 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신뢰는 현대 국가 발전에 원동력으로 주장하는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으로 공동체 형성에 필수요인이다. 신뢰는 단순히 사회적 관계 이외에 경제개발, 부패, 삶의 만족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요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적 동물이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함께 살아가지 위해 서로를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사회와 국가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 가운데 국회, 정당, 정치가 등에 대한 정치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가장 낮다. 정치는 사회체제에서 통합의 기능을 하는 체제로 정치 신뢰가 낮다는 것은 국가 위기를 가져올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더라도 이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높게 되면 그 사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OECD 34개 국가 가운데 33위로 최하위에 속하고 있다. 유전무죄는 아무리 비판해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에 의한 유권무죄는 철칙처럼 존재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그 사법부를 개혁하겠다고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내정하였다. 이에 힘 있는 이해관계 집단들이 폴리페서로 내로남불하는 내정자로의 자질이 사법부의 신뢰 회복의 적임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이 타당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러한 주장이 사법부 신뢰 회복을 반대하기 위한 논리로 강조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 속에 있다. 남북과 한일의 외교문제부터 여야의 정치권, 노사의 경제권에서 선생과 학생의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신뢰가 존재하지 않게 되면 좋은 정책도, 굳건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나라와의 동맹도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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