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시골에서 자란 나는 비슷한 동년배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선시대 사람이 돼버린다. 도시에 흔한 슈퍼도 없었고 일상이 흙을 만지며 노는 일이었다. 1970년대 농촌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기면 집집이 담배 수확에 분주했다. 당시 담배 농사는 목돈이 생기는 농가의 큰 농사여서 온 가족이 매달리는 일 년 농사 중 가장 큰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도 못 가고 담배를 엮기도 했고 주말이면 늘 담배 농사에 함께 해야 했다. 손이 많이 가고 사람도 많아야 하니 자식들은 늘 훌륭한 일손이었다.

달구지에 담뱃잎을 가득 실어 오면 다음 달구지가 오기 전까지 담배를 다 엮어야 했는데, 경운기가 들어오고부터는 속도를 더 내야 했다. 담배 농사는 연중 농사여서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일이었다.

봄이 오기 전 비닐하우스에 담배 모종을 기르고 아침저녁으로 물도 주고 얼지 않게 보은에 신경 써야 하는 세심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저녁까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담배 하우스 걱정이 먼저였다. 언 땅이 녹으면 밭에 둑을 올리고 담배 모종을 심고 비닐로 둑을 씌운다.

이 일은 동네 사람이 모두 품앗이를 했고 어린 나는 비닐을 잡고 긴 밭둑을 달렸다. 비닐 안에서 담배가 자라면 구멍을 내어 숨구멍을 내주어야 한다. 구멍 낸 자리에는 일일이 흙으로 복토를 해주어야 풀이 자라지 않는다. 쪼그려 앉아서 하는 고된 작업이다.

담배는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쑥쑥 자란다. 꽃이 피기 전 줄기와 잎 사이에 자라는 담뱃순을 제거하고 꽃이 피면 꽃대도 꺾어주어야 한다. 내리쬐는 태양과 잎에서 나오는 끈끈한 액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제 잘 익은 담뱃잎을 따서 엮는 시기다. 가장 무더운 여름날 사오일 주기로 담뱃잎을 따고 엮고 말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다 엮은 담뱃잎을 건조실에 걸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다.

건조실은 2~3층 높이로 황토와 나무를 이용해 만든다. 층층이 줄을 묶을 수 있도록 하여 빨래를 널 듯 담배를 건다. 다 말린 담배는 황토빛을 띠는데 차곡차곡 창고에 쌓아둔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가을이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사랑방에 모여 담배 조리를 시작한다. 잘 마른 담배를 품질별로 선별하여 한 움큼씩 묶어주는 과정이다. 이제 담배 수매만 잘 마치면 일 년 담배 농사는 끝이 난다. 그 시절 담배농사는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농가 소득의 으뜸이었다.

이제는 담배 농사를 짓지 않는다. 흙으로 만든 건조실을 대신했던 석유를 때는 벌크는 고추나  벼를 말리는데 사용한다. 매미가 지천으로 울어대면 오래 전 추억처럼 담배 농사짓던 일이 생각나니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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