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물개는 사람들이 나루를 건너 배에 탈 대나 내릴 때나 땅과 떨어져 있어 노다지 물에 빠지는 것을 보아왔다. 나루터 가에 석축을 쌓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물에 빠질 염려도 없고 풀등에서 파내는 자갈도 처리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였다. 뿐만 아니었다. 나루터 물가 바닥을 한 길만 파내고 석축을 쌓으면 강심이 깊어져 얼마든지 마음대로 큰 배도 뭍에 접해 댈 수 있었다.

“품이야 좀 들어가겠지만 물개가 좋은 생각을 해냈구나. 물에서 노는 놈이라 찬찬이도 봤구나!”

김상만이 물개를 추켜세웠다.

물개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북진나루 어귀의 석축 공사가 마무리되자마자 곧바로 나루터 물가 석축 쌓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루터 석축 작업은 어귀의 석축에 비하면 일도 아니었다. 어귀처럼 물살이 센 곳이 아니라 호수처럼 잔잔한 곳이니 큰 바위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물막이 공사로 수위가 낮아져 갯바닥이 낮아져 강바닥이 드러나 있어 사람들이 땅에서처럼 일해도 되니 훨씬 수월했다. 풀등에서 파낸 자갈을 일일이 일꾼들 힘으로 옮기던 것도 떼배로 퍼올려 강가로 실어 나르니 사람들 힘은 힘대로 줄이고 일의 진척은 빨랐다.

“저 일꾼이 할 일을 만들어야하는데 뭐가 좋을까?”

풀등의 자갈을 파내 이고지고 나르던 일꾼들 대신 떼배가 그 일을 떠맡자 대부분 할 일이 없어졌다. 김상만은 노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해 일거리를 만들까 궁리했다. 그렇지만 강가에 석축을 쌓는 일이나 풀등을 파내는 일까지는 미리 계획된 일이었으나, 뭍 가까이 배를 댈 수 있는 부두를 만들거나 일손을 놓고 놀고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일을 만들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데 떼배를 만들어 일감을 줄인 덕분에 일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각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놀게 된 것이었다. 일이 끝났으니 각기 마을로 돌아가도록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김상만의 생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진에 모였을 때 힘을 합쳐 어떤 일을 도모했으면 해서였다. 한편으로는 북진 공사장에 일을 하러오면서 품삯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일찍 일이 끝났으니 사람들의 그런 바람들이 어그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는 예전과는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동네에 무슨 큰일이 생기면 서로서로 품앗이를 해주며 힘든 일을 넘겼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세상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부리면 임금을 지불해야하는 세상이었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공짜 일은 없었다. 물론 지금 북진에 모인 대부분은 북진여각 최풍원에게 덕을 수차례씩 본 사람들이라 각 마을 객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은공을 갚기 위해 모였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이라면 모르겠지만, 보름씩 한 달씩 일을 시키면서 거저 부려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풍원은 사람들에게 품삯을 주기위해 충주 윤왕구 객주로부터 급전을 빌려 여주에서 하미를 구해온 것이었다. 그것은 북진장을 개설하기 위해 상전을 짓는 일과 큰 배도 들어올 수 있게 북진나루를 확장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새로 일을 벌이려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줄 돈이 필요했다. 그것은 김상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행수, 한번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외다. 그러니 이래 모였을 때 뭣이라도 하나 큰일을 했으면 좋겠소이다. 그런데…….”

김상만은 여각으로 최풍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동안의 일 진척을 소상하게 알리고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중요한 대목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북진여각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차마 돈 이야기를 선뜻 할 수 없었다.

“김 객주, 마을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 하니 길을 닦아보면 어떻겠소이까?”

김상만의 걱정과는 달리 최풍원은 여사스럽게 대답했다.

“대행수, 여각 형편이 그래서…….”

“언제는 우리가 쌓아놓고 일을 했습디까?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또 뚫고나갈 구멍이 있겠지요. 김 객주 말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이 기회에 무슨 일이고 하나 더 마무리하지요. 그래 뭐가 좋겠소이까?”

최풍원이 물었다.

“글쎄요, 그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대행수 의향을 듣고자 이리 왔소이다.”

김상만이 최풍원의 입에서 무슨 말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표정을 살폈다.

“길을 내면 어떻겠소이까?”

“길이요?”

김상만은 최풍원이 느닷없는 답변에 뜻을 알아채지 못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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