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시선이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는 여성화가들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시선이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는 여성화가들
  • 충청매일
  • 승인 2019.07.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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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시선: 불쾌한 시선을 견디는 방법
(1) ‘뭘 봐?’라고 말하고 싶은 음험한 시선들

에밀리 매리 오스본, 일하는 여성을 향한 시선 그려내
집 벗어난 공공의 영역에서 그녀들은 구경거리로 전락
공공연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경우 여성의 탓으로 돌려
살아왔던 삶 속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압박 익숙해져
낮은 신분의 여성들은 더욱 노골적인 시선 감당했어야
에밀리 매리 오스본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 1857(왼쪽), 매리 커셋 ‘특별관람석에서’, 1878
에밀리 매리 오스본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 1857(왼쪽), 매리 커셋 ‘특별관람석에서’, 1878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에밀리 매리 오스본(Emily Mary Osborne)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Nameless and Friendless)’에서는 공공장소에 나온 일하는 여성이 감당해야했던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화면에 가운데 서 있는 여성은 어쩐지 불편하고 어색해 보이는 얼굴로 서 있고 그 옆에는 나이 어린 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다. 여성이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액자를 낀 그림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눈을 내리깔아 바라보는 남자는 이 장소, 즉 그림을 매매하는 매장의 주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상당히 젠체하는 태도로 그림을 바라보는데 표정이 탐탁지 않아 보인다.

자신이 그렸을 그림을 팔러 나온 여성은 꽤 먼 길을 걸어온 것 같다. 하필 비가 내리는 날 젖은 길을 걸어온 그녀의 치맛단에는 진흙이 묻어있고 의자에 기대어 둔 우산에서는 빗물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가져온 그림을 꼭 팔고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절박함이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화상이 그림 감식을 끝낼 때까지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녀는 손에 감긴 줄을 이리 저리 꼬면서 어색함을 달래고 있다. 반면 그녀의 동반자로 함께 온 남자 아이의 시선은 거만한 화상의 얼굴에 꽂혀 있다. 아이의 표정은 자신이 동반해 온 여성의 그림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화상은 그녀의 그림에 좋은 평가를 하거나 순순히 좋은 가격을 쳐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그녀의 운명을 쥐고 있는 화상 이외에도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화면의 왼쪽에 있는 비단중절모의 사내들은 판화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있지만, 손에 든 작품 대신 중앙의 젊은 여자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한 남자는 마치 작품을 보는 척 고개를 숙인 채 눈만 들어 그녀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눈의 희번득한 흰자위가 반짝인다. 다른 남자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걸친 편안한 자세로 고개를 돌려 그림을 가져온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젊은 여성 화가는 집을 벗어난 공공의 영역에서 이렇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동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를 보호해 줄 사람은 그녀 자신이다. 실상 그녀가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일 터이다.

에밀리 매리 오스본은 생계를 위해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을 확실히 곤경에 처한 입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림 속의 이 여성이 처한 어려움은 그림을 팔아 살아가는 가난한 화가로서의 고충 뿐 아니라 사회에 나온 여성들이 불필요하게 감내해야 하는 음험한 시선들에서 오는 고통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직업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여성화가 에밀리 매리 오스본은 이러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상 화가는 ‘보는’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추상미술이 출현하기 이전인 19세기까지의 화가들이란 당연히 대상을 ‘응시’하여 그것을 자신의 세계관과 감성으로 재현하는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에밀리 매리 오스본의 그림 속 주인공 역시 정물이건 풍경이건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그리는 ‘바라보는’ 사람일 것이나, 그녀가 공공장소에 출현했을 때는 ‘바라봄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물론 그녀의 가난한 차림새는 중절모의 남성으로 하여금 그녀를 함부로 쳐다보아도 상관없다는 판단을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다음 순간 그림 매입을 거절당하는 이 젊은 여성 화가에게 중절모의 남성들은 희롱섞인 농담을 건넬지도 모른다. 여성 화가가 고개를 꼿꼿이 들어 중절모들에게 코웃음이라도 날렸으면 시원하겠지만, 화면의 음울한 분위기는 그런 결말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가난한 여성화가를 음험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저리도 공공연하게 당연한 것이었다면, 신분이 높은 여성은 좀 달랐을까? 미국 출신 여성화가이지만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했던 매리 커셋(Mary Cassatt)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쉽게 구경거리가 되는 장면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냈다.

그림 속에는 공연에 흠뻑 빠져 있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오페라하우스의 특별석(Loge)에 앉아 무대를 더 자세히 보려고 몸을 기울이고 있다. 오페라글라스를 들어 눈에 바짝 대고 있지만 팔꿈치를 난간에 괴어 기댄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인다. 다른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지만, 신경이 온통 무대에 쏠려 있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거나 장식을 할 수 있는 부채는 잊은 것처럼 보인다. 이토록 심취해 보고 있는 공연이 무엇일지 궁금해질 정도로 입을 꼭 다문 그녀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그림 속에는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 그녀가 앉은 특별석(Loge)의 건너편에는 대충 몇 번의 붓질로 그려진 남자와 여자들이 있다.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쩐지 서로 잡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자리를 뜨고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건너편에 오글오글 앉은 사람들 중 단연 눈에 띠는 사람은 그림의 주인공처럼 한 손에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있는 대머리 남성이다.

이 남성의 오페라글라스가 향하고 있는 것은 무대 방향이 아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대가 아니라, 이 그림의 주인공인 것이다. 옆자리에 앉아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과 동행했을 것이 틀림없는 이 남성은, 옆자리 여성의 의자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앞으로 뻗어나오는 자세를 지탱하고, 다른 쪽 팔은 난간에 기대어 오페라글라스를 받치면서 우리의 주인공을 쳐다보고 있다. 어쩐지 뻔뻔스럽고 기분 나쁜 시선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이기는 하지만 서로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공공연하게 쳐다본다는 것은, 시선의 당사자라면 누구나 당혹할만한 일이다.

“뭘 봐”라는 말이 상호간에 시비를 거는 말일 수 있는 것은, 빤히 쳐다보는 것이 상대에 대한 일종의 압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쳐다보는 것에 반응하며 자신을 무시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으로 판단하고 “뭘 봐”라는 식으로 방어하는 쪽은 대개 남성들이다. 여성들이 원치 않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어떨까. 공공연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경우, 그것은 시선을 받는 여성의 탓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다. 요란하게 화장을 해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키가 너무 크거나 작아서, 얼굴이 예쁘거나 못생겨서, 혹은 이와 비슷한 이유로 여성들은 시선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에 기분이 상해도 “뭘 봐”라고 일일이 반응하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이미 살아왔던 삶 속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로 매리 캐샛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19세기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외출한 여성 주인공은, 그림 속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를 에스코트하는 남성 동반자가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거리나 공연장 등의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남성 보호자를 동반하는 조건의 자유였다.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낮은 신분의 ‘불쌍한’ 여성이거나 혹은 남성을 유혹하려는 매춘부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그러한 유형의 여성들은 더욱 노골적인 유형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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