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새벽 12시20분 홀로 집에 있는 아들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쯤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려도 안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처음에는 별일 있겠나 생각했지만,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흐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되었다. 깊이 잠들었나. 아니면 밖에 나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나. 혹시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나. 생각의 꼬리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었다.

몇 가지의 방법을 생각했다. 119는 비용이 많이 드니 열쇠 전문점에 연락하라는 답이 왔으므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상층이니 옆집에서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 볼까 생각했으나 너무 위험했고 새벽에 옆집을 방문하는 일도 민폐였다. 옥상에서 창문을 두드리거나 들어가 보려 관리사무실 당직자와 통화를 했다. 그러나 옥상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옥상을 생각했을까. 규정을 얘기하며 당직자는 단호했다. 삼각뿔 형태의 옥상이라 위험성이 컸다. 당직자가 알려준 열쇠 전문가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한 명과 통화가 연결됐으나 올 수 없다고 한다. 사정을 얘기했으나 119도 관리실도 어떤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경찰서에 아들의 핸드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아파트 주변 PC방과 공원, 학교 운동장을 다니며 아들을 찾아 나선 지 한 시간여가 흘렀을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는 것이다. 잘 자고 있는데 왜 문을 부스고 들어 오냐고 오히려 의아해한단다. 집에 도착하니 지인이 쇠지레와 망치를 들고 내려온다. 아내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인이 현관문을 열고 자물쇠를 부순 후에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가장 도움이 돼 준 것은 119도 관리자도 전문가도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들은 아무 일 없이 자고 있었고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만약 119가 출동해 문을 여는 시간 다른 위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출동하지 않은 119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벌집 제거나 동물 포획, 잠금장치 개방 등의 순으로 출동 건수가 많았다고 하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옥상에 올라갔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관리실에 있을 것이었으니 문을 따지 않은 관리실 책임자의 선택도 옳은 일이었다. 핸드폰 위치 추적이 최대 근방 1㎞로 정확한 위치 추적이 어려운 경찰 시스템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 아무 일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반대였다면, 출동하지 않은 119와 규정을 지킨 관리자, 정확하지 않은 위치 추적 시스템 모두 원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묻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출동하지 않은 119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며, 무심히 방관한 아파트 관리자에겐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한 밤의 해프닝을 겪으면서 세상인심을 생각한다. 자신과 무관한 일에 선뜻 나서주는 이가 없다는 것에 원망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왔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남을 원망하며 살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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