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우갑 어르신께 지토선 청을 넣어놨더니 하마 보내셨는가 봅니다.”

최풍원이 충주 윤왕구 객주에게 급전 이천 냥을 빌려 그 돈으로 하미를 구하기 위해 여주로 내려가며 부탁을 했었다. 어차피 일만 접이나 되는 마늘을 한양 뚝섬가지 옮기려면 배편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늘이 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거리한 마을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북진 인근의 마늘이야 배가 내려가면서 실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조산촌 마을에서 매입한 마늘은 북진보다 상류인 하진나루에 집산되어 있었다. 내 배라고 해도 지금 같은 갈수기에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도 대량의 물건을 싣고 오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성가신 만큼 운임을 더 물어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혹시 윤 객주 상전의 지토선이 있으면 실어서 북진까지만이라도 옮겨다놓으면 수월할 것 같아 우갑 노인에게 부탁을 해놓았는데 그새 지토선이 올라오고 그 배를 박한달 객주가 타고 올라가 모두 실어온 모양이었다. 박한달은 하진나루의 물량 뿐 아니라 다름 마을의 마늘까지 옮겨다 놓았다. 박한달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평생 장사를 해온 덕분에 돌아가는 일머리를 척척 알아내 두 말이 필요 없이 일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대행수가 충주로 떠나고 바로 그 다음날 배를 보냈더이다.”

“박 객주님, 고생하셨구려! 그런데 복석근 객주와 함께 한번만 더 뚝섬에 다녀 오시지요!”

최풍원이 박한달에게 복석근과 함께 뚝섬 서태술 목상에게 마늘을 넘기고 오라고 한 것은 앞으로 채마전을 하게 될 복 객주에게 미리 견문을 넓혀보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대행수, 이제 나도 내 상전 짓는 일에 매달리려고 하는데?”

박한달이 뚝섬을 다녀오라는 최풍원의 말에 토를 달았다.

“상전 짓는 일은 도편수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박 객주께서는 서태술 목상과의 거래를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아무리 도편수가 알아서 한다고 해도, 집이라는 곳이 당사자가 들여다보는 것하고 아닌 것하고는 천양지차 아니겠는가?”

박한달도 고집을 꺾으려하지 않았다.

“서태술 목상과의 거래는 처음부터 박 객주님과 함께 했으니 일머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제일 잘 아시지 않겠소이까. 내가 가도 좋겠지만 이 일 저 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하는 말입니다.”

“대행수! 물산만 넘겨주면 되는 일인데 복 객주 만 다녀오면 안 되겠는가?” 

좀처럼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사람이 박한달 객주였다. 집안일보다도 동네 일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식구들이 굶어도 이웃부터 먼저 살피는 사람이었다. 그런 박한달이 대행수 최풍원의 부탁을 거푸 거절하는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박 객주님!”

최풍원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박한달 객주가 그럴 때는 그럴만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선세는 내 알아서 헐하게 잘 해줄 테니 최 대주 내 공을 잊지 말고 앞으로 잘해 보십시다!”

마덕필은 북진나루를 떠나면서 거듭해서 최풍원에게 당부했다. 북진 일대의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고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와의 거래를 선점하고 싶어서였다.

박한달 객주가 일머리를 알아 미리 준비를 해놓은 덕분에 마덕필의 배는 이튿날 일찍 북진나루를 떠나 한양으로 떠날 수 있었다. 배에는 조산촌을 비롯한 청풍 일대에서 도거리한 마늘 일만 접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배에는 복석근 객주가 타고 있었다. 복 객주를 혼자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북진 전체가 공사로 한창인지라 누구를 딸려 보낼 형편도 아니었다. 너무나 남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앞으로 북진장에서 채마전을 담당해야 할 복석근이니 잘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최풍원도 큰 시름 하나를 덜었다. 영춘에서 목상 서태술이 목재 대금을 현물로 했으면 할 때도 한양까지 운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었다. 그런데 우연히 경강상인 마덕필을 만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큰 부담이 사라진 것이었다. 

마덕필의 경강선이 떠나가자 북진에서는 여주에서 가져온 쌀들을 풀어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풀었다. 그리고 객주들을 불러 조산촌과 인근 마을에서 도거리한 마늘 값으로 쌀을 실어 보냈다. 쌀을 나눠주자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활기가 솟았다. 밥에서 힘이 나는 법이었다. 먹지 않고 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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