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워낙에 판길이의 명성은 사람들에게 자자했다. 나무를 다루는 재주 또한 출중했지만, 나이도 지긋한 까닭에 모두들 판길이가 상전 지을 도편수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부터 내 마을 니 마을 할 것 없이 모든 목수들은 하나로 합치고 대목과 소목으로 나누겠소이다!”

도편수 판길이가 치목장에 모여 있는 모든 목수들을 한데 모으겠다고 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우리는 우리 객주 말을 따라야 하오!”

“그렇소이다. 우리는 우리 상전만 지으면 되는데 뭣 하러 합쳐 일을 한단 말이오?”

“제일 빨리 상전을 짓는 마을에는 쌀 열 섬을 상으로 준다는데 합치면 그걸 어떻게 받는다는 말이오이까?”

각 마을에서 모인 목수들이 판길이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했다. 도편수 판길이의 처사는 북진여각 대행수 최풍원의 의도와도 완전히 상반되는 행위였다.

최풍원은 어물전 김길성, 세물전 신덕기, 피륙전 김상만, 채마전 복석근, 싸전 박한달, 약초전 배창령, 잡화전 장순갑 등 일곱 개 상전을 짓고 각 상전 짓는 일을 각각의 상전 객주들에게 맡길 요량이었다. 그리고 각 객주들 간에 경쟁을 붙여 촉박한 시일을 당겨 공사를 일찍 끝내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일꾼들 사이에 더 경쟁을 불붙이기 위해 쌀까지 상금으로 내걸었다. 최풍원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요, 잘하는 일이라 생각되어 한 일이었지만 도편수 판길이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무는 집을 짓는데 사람 뼈와 같은 것이오! 그만큼 중하다 이 말이오. 우리 목수는 집 뼈를 만드는 사람이오. 살이야 뺐다 찌웠다 할 수도 있지만 뼈는 그럴 수 없소이다. 벽이야 잘못되거나 헐으면 다시 고칠 수 있지만 기둥은 잘못 다듬거나 잘못 세우면 헐어버리기 전에는 다시 고칠 수 없소이다. 그런 중한 일을 서로 시세우다 그릇 칠 수는 없소! 여러 목수님들 어찌 하시겠소? 내 생각을 따르겠소, 아니면 쌀 욕심에 눈이 멀어 엉망으로 상전으로 짓겠소이까?”

판길이가 목수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우리 같은 목수쟁이야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우리가 무슨 권한이 있소이까?”

“우리한테 일을 시킨 객주 말을 들어야 품삯을 받지 도편수께서 우리 품삯을 주는 것이 아니잖소?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객주 말을 거역할 수 있겠소이까?”

목수들의 말도 옳았다. 일을 하고 품삯을 받아 먹고사는 목수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돈줄을 쥐고 일을 시키는 사람이 목수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주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목수들의 처지도 당연했다.

“여러 목수님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꿰맬 수 없듯 나무 일이라는 게 급하다고 마냥 서둘러 될 일이 아니잖소이까. 더구나 서로 경쟁을 부추겨 마구잡이로 일을 하다보면 사상누각이 된다는 것을 수없이 봐오지 않았소이까?”

“아무리 도편수가 그래도 우리는 우리 객주 말을 따를 수밖에 없소이다!”

도편수 판길이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치목장에 모여 있는 목수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목수들과 상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판길이가 여각으로 최풍원을 찾아갔다.

“대행수, 이번 상전 짓는 일 중 목수가 하는 일은 내게 전권을 주시오!”

도편수 판길이가 최풍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이까? 목수들이야 나무 다듬는 일만 하면 되지 않소이까? 목재는 지금 나루에 다 당도해 있지 않소이까?”

최풍원이 판길이가 하는 말뜻을 언뜻 알 수 없어 거푸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것이 아니라 지금 북진에 모인 모든 목수들을 내가 직접 다뤄야겠소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이 일을 할 수 없소이다!”

판길이가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왜 그러는지 자초지종을 얘기해야 나도 무슨 뜻인지를 알 게 아니오이까?”

최풍원도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대행수 지금 이런 상태로는 상전을 지어봐야 배가 산으로 갈 것이외다!”

“도대체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오리무중 같은 판길이의 거듭된 소리에 최풍원도 짜증이 올라와 거센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대행수, 불공을 들여도 열 번 절 할 게 있고, 백번·천 번 할 일이 있지 않겠소이까? 집 짓는 것 또한 한가지 아니겠소이까. 뚝딱 하룻만에 지을 집이 있고, 한 달·두 달이 걸릴 집이 있고 몇 년을 지어도 짓지 못할 집이 있소이다. 대행수께서는 북진에 어떤 상전을 짓고 싶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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