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고맙소이다! 목상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외다!”

최풍원도 서태술에게 진심을 다해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나는 나무 장사라 나무로 내 마음을 전했으니, 최 행수는 여기서 나는 물산으로 꼭 갚아야 합니다! 하하하!”

“알겠소이다. 내가 등짐을 져서라도 철철이 나는 여기 산물들을 떨어지지 않게 댁내 보내드리리다!”

서태술의 농담을 최풍원이 받아넘겼다. 주변에 있던 일행들도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봉수 내일이라도 여각에 쓸 목재를 가져가게! 그래 준비는 해놓았는가?”

“예, 어르신, 목도꾼과 동발꾼들은 맞춰놓았으니 내일 식전부터라도 당장 일을 시작하면 되고, 그들이 일을 하는 동안 뗏목꾼들을 알아볼 참입니다.”

“점점 갈수기가 다가오니 뗏목꾼들이 달리는가 보구만.”

“아무래도 점점 강물이 줄어드니 떼를 몰고 내려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초봄보다 배는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요. 그래서 요즘 용진나루에서 뗏꾼 구하려면 불공드리듯 해야 합니다요. 더구나 손발 잘 맞는 앞뒤 사공을 한꺼번에 얻으려면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힘이 듭니다요!”

“설마 떼쟁이 구하는 게 별 따기만큼 힘들까? 심 객주, 뻥을 쳐도 어지간하게 치게나!”

박한달이 심봉수의 과장된 표현에 일침을 놨다.

“박 객주, 봉수가 뻥 심한 사람은 아니라오. 내가 나무장사를 하며 용진나루에서 숩시 봐왔지만 콩 심은데 콩 나는 사람이지 실없는 사람은 아니오!”[충청매일]

서태술이 심봉수를 두둔했다.

“농담 삼아 한 말입니다요, 저두 심 객주의 곧은 성정이야 잘 알고 있지요!”

“어쨌든 최 행수, 목재는 당장이라도 가져가시오! 그리고 목재 대금은 현물 변제로 하는 걸로 하고, 물산을 옮기는 방법은 좀 더 생각해봅시다!”

“알겠소이다.”

최풍원도 서태술의 제안에 반승낙은 했다.

최풍원이 영춘에 올라왔던 것은 북진에 장을 개설하기 위해 지어야하는 상전의 목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최풍원은 영춘에만 올라오면 목재는 손쉽게 구할 것이라 생각했다. 남한강 최상류에 위치한 영춘은 강원도 태백산 지역에 산재해있는 벌목장에서 벌채된 황장목이 집산되는 최대의 나루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무가 집채만큼 쌓여있어도 이미 주인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이곳에 올라와 처음으로 알았다. 상전을 지으려면 지난 가을부터 미리 나무를 맞춰놓아야 했다. 만약 한양 목상 서태술을 만나지 못했다면 북진에 상전을 지으려는 최풍원의 계획에는 큰 차질을 빚을 뻔 했다. 북진에 상전을 짓는 일은 여름 장마가 오기 전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때까지는 이제 두어 달 남짓하게 남았다. 만약 영춘에 와 한양의 목상 서태술을 만나지 못했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서태술은 상전에 쓸 목재를 구해주겠다고 약조했고, 번듯한 여각을 새로 지을 목재까지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수천 냥은 족히 될 나무 값을 외상이나 다름없는 조건으로 주고, 대금도 이곳에서 나는 특산물로 현물 변제해달라고 했다. 피를 나눈 형제라도 그런 호조건으로 물건을 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서태술이 처음 만난 최풍원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다급한 처지에 그런 것에 연연할 겨를이 없었다. 서태술이 제시한 현물 변제를 하려면 몇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운운한다면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었다. 서태술이 제시한 조건에 반승낙처럼 대답했지만 최풍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가 바라는 대로 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 행수, 장사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장사가 뭐라니오?”

서태술의 물음에 최풍원이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내가 한창 장사를 할 때는 물건을 팔아 챙기는 돈만 보였다오. 그게 장사라고 생각했지요.”

“그럼 장사가 돈을 버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이오이까?”

“장사가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기는 하지만,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허깨비 장사요. 진정 장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버는 일이요. 그게 진정으로 남는 장사요!”

서태술처럼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그런 점은 최풍원도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태산처럼 쌓여있던 재산도 사람들 인심을 잃으면 하루아침에 검불처럼 사라지는 것을 최풍원도 아버지를 통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날 심봉수 집에 모인 사람들의 저녁자리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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