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행상하는 떠돌이 장사꾼이라면 상전이 무슨 필요가 있고 더구나 열 채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짐짓 모르는 척하며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목상을 보면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양처럼 그런 큰 규모도 아니고 시골 여각에 도가일 뿐이오.”

최풍원이 한껏 몸을 낮췄다.

“실은 내가 급하게 영춘으로 올라온 것은 작년 겨울부터 벌목해놓은 어떤 나무를 처분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문제는 그 나무가 내 나무가 아니오!”

“목상의 나무가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한양 광나루에서 같은 나무장사를 하는 목상이 있는데 그 목상의 나무요.”

목상의 이야기 즉은 이러했다. 지난 해 그 목상이 한양 도성 안에 사는 어떤 권세가 양반의 부름을 받고 갔다. 그 권세가의 아들이 왕족 집안의 딸과 혼사를 하게 되었는데, 혼사 후에 살 별채를 지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최상의 목재만으로 준비를 해놓으라는 것이었다. 권세가의 특별한 청을 받은 목상은 지난해 가을부터 태백산 깊은 산중 산판부터 시작해 목도까지 직접 감독을 하며 용진나루에 떼를 통나무를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봄이 되어 강물이 풀리자 떼만 묶어 띄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권세가 집안의 양반으로부터 없었던 일로 하자는 기별이 왔다. 그리고 혼사에 관한 이야기는 입도 뻥끗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왕족의 혼사와 관련된 부분이니 잘못했다가는 장사꾼 모가지는 서너 벌이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무엇 때문에 혼사가 깨어졌는지 목상으로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목상으로서는 겨우내 준비해두었던 통나무 판로가 막혔으니 그것이 더 큰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상이 관아에 잡혀갔다. 목상이 법을 어기고 봉산에서 무단으로 나무를 벌채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렇게 해서 벌채된 통나무가 자신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봉산에서 벌채를 하다 잡혀갔다면 그 나무도 모두 몰수되는 것 아니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한달이 목상에게 물었다.

봉산은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는 산이었다. 봉산은 나라에서 필요한 임산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특정한 지역을 보호·관리하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었다. 산은 나라나 백성에게나 아주 중요했다. 나라에서는 궁궐이나 관아를 짓거나 보수하고, 병선이나 조운선을 짓거나 개삭하는데 많은 목재들을 필요로 했다. 백성들 또한 집을 짓거나 땔감·비료·가축 먹이를 만드는데 많은 임산물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임산물이 무분별하게 남벌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 봉산제도였다.

“죄목이야 금지된 나랏산에서 벌채한 것이나 이미 그전에 권세가 양반과 약조를 하고, 관아에 뒷구멍으로 약채를 먹이고 한 일이니 거기까지는 아닌가 보오.”

“그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이다?”

박한달이 목상에게 다짐을 받듯 물었다.

“물론이오! 그런데 이 나무를 상전 짓는데 쓰기에는 너무 아깝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생각을 해보시오. 왕실과 사돈을 맺기 위해 지으려던 집에 쓰일 나무였으니 얼마나 좋은 나무만 선별을 했소. 최상이오! 그런 나무를 상전에 쓴다면 개발에 편자 격이니 어찌 아깝지 않겠소이까?”

“목상, 그렇게 좋단 말이오?”

“좋다마다요! 왕실 며느리를 보는 일인데 얼마나 공을 들였겠소? 나무도 최고지만 작은 대궐을 일곽에 모아놓은 그런 쨈새 갖춘 집에 들어갈 목재들이오! 본채에 안채에 사란채에 별당에 누각에 정자에 정말 탐나는 재목이오!”

목상의 자랑이 대단했다.

“그러니 뭐하오이까. 우리는 상전 지을 목재가 필요한데 그런 좋은 게 뭐 필요 있겠소이까? 개발에 편자지! 그러니 상전 지을 목재나 어떻게 알아봐 주시오!”

박한달이 쓸다리 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상전에 쓰일 목재나 알아봐달라며 목상의 말을 잘랐다.

“그렇소이다. 상전 지을 재목이나 목상께서 선처해주시오!”

최풍원도 박한달과 같은 생각이라 목상을 다그쳤다.

“대행수, 이젠 장사가 장터나 상전에서만 하는 게 아니오! 잔챙이 장사꾼들은 이전처럼 그렇게 장사를 하지만 거상들은 은밀한 곳에서 장사를 합디다. 여각에 상조직까지 가진 대행수라면 이런 집 하나 번뜻하게 가지고 있는 게 장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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