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객방 안에는 탕건에 마고자 차림의 중늙은이가 날방바닥에 앉아있었다. 중늙은이라고는 해도 초로를 갓 넘겼을까 풍채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당당해보였다.

“일행들이신가?”

목상은 여러 사람이 함께 방안에 들자 잠시 당황하는 낯빛이었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며 심봉수에게 물었다.

“어르신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리 들었습니다.”

“봉수 자네가 날 찾아왔다면 나무 문제 아니겠는가? 볼일부터 말해보게!”

목상은 최풍원과 박한달을 눈밖에 둔 채 심봉수에게 용건을 물었다.

“어르신, 실은 이분들이 급히 나무가 필요하다해서 뫼시고 왔습니다요.”

“무슨 나무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오?”

그제야 목상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나는 최풍원이라 하외다. 북진에서 여각을 하고 있는데…….”

“수인사야 내세울 것 있는 양반님네들이나 한나절 차리는 것이고, 보아하니 장사꾼 같은데 피차 바쁜 처지에 소간이 뭐시오?”

초면이라 인사를 차리려는 최풍원을 목상이 잘라버렸다.

“상전 십여 채를 지으려는 데 나무가 필요합니다. 목상께서 편리를 봐주십사 이렇게 청을 합니다.”

목상의 교만함이 거슬렸지만 최풍원은 속마음을 숨기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장사꾼이 서로 물건을 팔고 사는 데 편리가 어딨소? 편리는 돈에 따른 것이오!”

목상은 상대의 말끝마다 잘라버렸다.

“뭔 이런 인사가 있어!”

박한달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몸을 일으키려 움찔움찔했다. 최풍원이 박한달의 무릎을 지긋하게 눌렀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도 목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르신 그야 당연합죠! 그러니…….”

그런 사이에서 심봉수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양쪽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했다.

“상전 열 채라. 대가집 늘르리 잿집은 아니라도 만만한 양이 아니구려. 한 채를 짓는 목재라 해도 미리미리 맞추는 것인데 열 채나 되는 집을 짓는다면서 이제사 나무를 구한단 말이오? 우물에 가 숭늉을 찾는 게 빠르겠소이다.”

“여차저차 사정이 그리 됐소이다. 그러니 목상께서 힘을 좀 써주시오.”

“봉수, 자네 주인에게 말 해보지 그러는가?”

목상이 최풍원의 청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심봉수에게 미뤘다.

“어르신 지 주인 성품을 더 잘 알면서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요? 오죽하면 지가 어르신을 찾아왔겠습니까요?”

“하기야 그 양반 대단하지. 아마 급하게 물건을 찾는 줄 알면 자기 손자에게도 몇 곱접 금을 올려 받을 양반이지. 그렇게 했으니 뗏목쟁이를 하다 이 거친 산판에서 그만한 재산을 일궜지. 그건 그렇고 다 맞춰진 나무라 나도 당장은 내어줄 게 없으니 어쩌겠소이까?”

삼년상을 치루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더니 기껏 이야기를 하다 이제 와서 목상이 딴소리를 했다.

“참, 희안한 작자구려!”

“그럼 없는 나무를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소? 애를 낳아도 열 달은 걸리는데, 수십 년은 길러야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를 아침 댓바람부터 와 찾으니 하는 말 아니오?”

박한달이 또다시 불끈했지만, 객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또박또박 자기 말만 했다.

“그러지 마시고 어르신께서 어떻게 힘 좀 써 보시지요?”

심봉수가 목상에게 매달렸다.

“목상께서 백방으로 알아봐 주시지요.”

속에서 꾸역꾸역 치밀었지만 참아내며 최풍원도 다시금 부탁을 했다.

“대행수, 남에 산에 들어가서라도 내가 나무를 훔쳐 올테니 그만 일어서십시다!”

“박 객주는 잠시만 기다리시오!”

최풍원이 박한달을 주저앉혔다.

“행수시오?”

목상이 짐짓 놀라는 체 했다.

“여각과 상인조합인 도가를 하나 하고 있소이다.”

“그렇소이까? 나는 그냥 시골 행상쯤 생각을 했소이다. 여각과 도가를 하는 대행수라면 다시 얘기를 해봐야겠소이다!”

목상이 좀 전과는 달리 태도를 싹 바꿨다. 그러나 그것은 목상이 거짓으로 하는 꾸며하는 행동임이 분명했다. 최 풍원은 목상에게 상전 열 채를 지을 목재가 필요하다고 분명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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