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뗏일도 이젠 그만 끝날 때가 됐다는 얘기구려?”

최풍원이 두 뗏목꾼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올해 늦봄까지 눈이 와 높은 산이 첩첩했으니 그렇지, 겨울 가뭄이 심한 해였다면 진즉에 봄 떼는 끝났을 거드래유!”

“떼는 겨울하고는 애첩보다도 더 찰떡 사이래유!”

거친 일만 반복되는 팍팍한 사내들의 일상이다 보니 뗏목꾼들의 입에서는 말끝마다 계집들 이야기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뭐든지 갖다 붙이면 계집이다. 이젠 뗏목에다 겨울과 첩실까지 붙인다.

“떼하고 겨울하고 무슨 관계가 있답디까?”

최풍원이 가당찮아 뗏꾼에게 물었다.

“대체 형씨는 뭘 하는 사람이드래유?”

뗏꾼이 답답하다는 듯 최풍원에게 되물었다.

“뭘하냐니요?”

“그렇지 않소! 영춘에 와서 더구나 여기 용진에 왔으면 나무 일 때문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일에 대해 백지 숙맥이니 하는 말이래유!”

뗏꾼과 최풍원이 서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뗏꾼은 용진바닥에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자꾸만 하려니 속이 터지고, 최풍원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에 물어보면 퉁망부터 날아오니 답답했다.

산에 나무를 베고 그것을 뗏목으로 엮는 일은 대체로 늦가을과 봄 사이에 이루어졌다. 우선 목재를 만들려면 높은 산에 있는 나무부터 베어내야 했다. 그것을 벌채라 하는데, 벌채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늦가을이나 한겨울에 행해졌다. 그 이유는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나 가을에는 나무의 무게가 엄청나기도 하고 숲이 빽빽하기 때문에 험한 산중에서 산 아래 계곡까지 무거운 통나무를 운반하는 것이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나무들이 성장이 왕성한 계절에 벌채를 하면 나무에 싹이 돋고 푸르둥둥해져 목재로써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 벌채를 해서 눈 쌓인 산비탈을 이용해 골짜기 물가까지 통나무를 굴려 내렸다. 그렇게 물가에 모아진 목재들은 작은 뗏목으로 만들어져 골안을 타고 큰 강물과 만나는 나루터로 운집되었다.

골안 뗏목은 여기에서 해체하여 다시 큰 뗏목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작업 또한 늦겨울이나 강물이 풀리는 초봄에 이루어졌다. 겨우내 움츠렸다가 따뜻한 봄이 되어 기지개를 펴는 것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봄이 돌아오면 사람들 활동도 왕성해졌다. 그래서 뭔가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헐은 집도 보수하고 오래된 집은 새로 지었다. 남한강 하류에는 조선의 도성인 한양이 있었다. 그곳은 조선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소비되는 물자는 대단했다. 목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임금이 사는 대궐과 온갖 관청들, 양반가들, 상전들, 수많은 민가들이 모두 목재를 필요로 했다. 그런 목재들을 제 때 공급하려면 이른 봄부터 서둘러야했다.

세상 이치는 참으로 기묘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여름처럼 비가 내리지 않아도 봄에도 강물이 불어났다. 겨우내 강물이 꽝꽝 얼어붙고 겨우내 내린 눈이 깊은 산중에 첩첩이 싸여 그득하게 물을 담아두었다. 그러다 해동이 되기 시작하면 언 강이 녹고 첩첩산중에 눈이 녹으며 강물이 불어났다. 봄 뗏목은 그 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봄 갈수기가 닥치기 전 남한강 아래 대처와 도성에서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강 위의 나루터에서는 얼음물에 몸을 담그고 뗏목을 엮어야 했다. 떼하고 겨울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인 셈이었다.

“강수야, 뗏목꾼들 얘기도 그렇고, 심 객주 얘기도 한가지고 떼가 이제 막바지인가보다. 지난 가을에 맞춰두었어야 할 일은 턱 밑에 와서 하려니 이 지경이구나. 우리 북진에도 이번 여름이 가지 전 상전을 지어야하는데 걱정이구나.”

“대행수님, 지난 가을에는 그런 계획조차 없었고, 할 수도 없는 형편이지 않았는지요?”

“그래도 여각주인이고 도중회 책임을 맡은 행수라면 몇 달 앞은 예상을 했어야지. 나를 믿고 나를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인데 내가 너무 쉬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불안한 마음에 최풍원은 자꾸 자책감만 들었다.

“대행수님, 너무 심려 마십시오! 최선책을 찾지 못했다면 차선책을 만들면 될 일 아닙니까? 내일 심 객주님을 만나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강수가 최풍원을 위로했다.

“그럴까?”

최풍원도 강수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가시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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