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대행수님, 우리도 관아와 결탁하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저기 장등들이 나래비를 한 걸 보니 거기가 용진나루인가 보구나.”

강수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최풍원이가 어둠 속에서 앞을 가리켰다.

사방이 깜깜한 가운데 눈앞에 장등 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지간한 고을도 해가 넘어가면 암흑천지로 변하는데 첩첩한 이런 산중에 등불이 형형하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두 사람이 불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불빛을 향해 다가간 두 사람은 가까워질수록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행수님, 장등마다 주막입니다!”

강수의 말대로 강줄기를 따라 주막집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주막집마다 사람들이 벅적벅적했다. 주막집 방은 물론 마루와 마당까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을 푸며 왁자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두 사람도 기다란 등을 문간에 매달아놓은 그중 한 주막으로 들어갔다.

“이번 물길은 얼마나 걸렸는가?”

“스무 닷새나 걸렸다네.”

“지난번보다 열흘이 더 걸렸네?”

“그땐 초봄이라 강물이 많이 늘었잖는가?”

“하기야 나도 그땐 닷새 만에 한양 뚝섬까지 갔었지!”

“물길만 잘하면 이번 참에는 네 행보까지도 할 수 있겠는데 하루가 다르게 강물이 줄어드니 그렇게는 힘들겠고 이번에 갔다 오면 여름 장마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구먼.”

“세 참만 해도 그게 어딘가!”

“그래도 올해 첫 떼배 띄울 때는 물길도 좋고 날씨도 잘해 세 행보도 했지 날씨 사나웠으면 두 행보도 간신히 했을걸?”

“나도 첫 행보 땐 나흘 반나절 만에 여기서 뚝섬까지 당도했구먼!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물길이 나빠지니 이번 다녀오면 종쳐야 할 것 같으이.”

최풍원이 앉은 옆자리에서 뗏꾼들이 한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뗏목을 띄우는 일은 강물이 어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떼를 띄우는 것은 초봄에 시작되었다. 언 강물이 녹기 시작하여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면 뗏목을 띄우기 시작했다. 일 년 중 가장 떼를 몰기 좋은 시기가 이 무렵이었다. 높은 산에 겨우내 첩첩 쌓인 눈과 골짜기 얼음들이 녹아내리며 불어난 물은 여름 장마물처럼 거칠지 않아 유속도 안정되었고, 산들거리는 봄바람은 미친 듯 돌아치는 여름 광풍처럼 거칠지 않아 뗏목을 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뗏목꾼들 말처럼 올봄에는 물길도 순하고 바람도 순하니 영춘에서 한양의 뚝섬까지 네·닷새면 당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양에서 영춘으로 되돌아오려면 육로를 걸어서 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거리가 장정 걸음으로 아무리 빨리 걸어도 열흘은 족히 걸리는 먼 길이었다. 그것도 오다가 한눈 팔지 않고 나는 듯 걸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니 첫 떼를 몰고 보름 만에 한양을 갔다 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다녀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형편에 봄 한철 영춘에서 한양까지 두 행보만 했어도 엄청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옆에서 떠들어대는 뗏꾼들은 이번 봄에 세 행보 째 시작하려 하고 네 행보까지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보시오들, 한양 다녀온 이야기 좀 들어봐도 되겠소이까?”

최풍원이 옆자리의 뗏목꾼들에게 합석을 청했다.

“유람 차 한양을 다녀온 양반님네도 아니고, 우리처럼 떼를 몰고 물위에 떠있다 온 떼놈들에게 무슨 한양 이야기가 있겠소이까?”

최풍원의 청에 뗏목꾼들이 가당치도 않다며 실소했다.

“그래, 떼는 얼마나 더 띄울 수 있을 것 같소이까?”

최풍원이 강물의 수량을 물었다.

“한 삭도 채 어렵겠지?”

“스무날 전쯤 내려갈 때도 강물이 줄어 드물게 바닥이 보여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더 하지 않겠소. 이번에 갔다 오면 영춘 떼는 더 못 내려갈 것 같소이다. 내가 스무 해 넘게 떼를 몰아왔는데 지금 물길을 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바닥이 드러날 것 같소이다!”

최풍원의 물음에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의 뗏꾼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했다. 어떤 사실을 깨닫는 대는 경험자의 조언만큼 정확한 것은 없었다. 뗏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풍원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강물이 줄어들면 떼를 옮길 방법이 전혀 없을까요?”

“짐배야 물골을 따라 배끌이가 끌어도 된다지만, 뗏목을 무슨 수로 사람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땅에 박혀있는 나무를 맨손으로 뽑는 게 더 쉽지!”

뗏꾼들이 최풍원의 물음에 콧방귀를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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