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청주시 공원관리과 팀장

[충청매일]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우리 부서가 문암생태공원에 조성한 10만 송이 튤립과 관련한 화면이 나온다.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10만 송이 튤립이 피어 있는 장관이 보이고 한 시민 가족의 인터뷰 영상이 이어졌다. 박 씨 패밀리이다. 아이를 안은 아빠도, 옆에 서서 인터뷰를 하던 엄마도, 아이도 모두가 박 씨였다. 엄마 박 여사님이 “이렇게 예쁘게 튤립을 심고 키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멀리 안 나가고 집 가까운 곳에서 이런 예쁜 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분의 “고맙다”라는 말에 괜히 혼자 울컥했다.

튤립은 동해(凍害)를 입는 꽃으로, 5∼6월에 구근을 캐서 꽃 묘장에 보관하다가 늦가을에 문암생태공원에 옮겨 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등 지극 정성으로 가꿔야 다음해 4월에 꽃을 피운다. 거의 일 년 가까운 우리 직원들의 수고를 저분이 알아주시는구나 싶으면서 혼자서 울컥한 것이다.

우리 공원관리과는 아주 많은, 정말로 많은 민원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의 80%, 아니 거의 90%는 항의성 전화이다.

소나무가 간판을 가려서 장사가 안 되니 소나무를 옮겨 주든지 가지를 다 잘라서 간판이 보이게 해 달라, 공원 화장실 전구가 나갔다, 휴지 없다, 비누 없다, 공원에 강아지가 못 들어오게 해 달라, 자전거 좀 못 다니게 해 달라….

직접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화가 나 있으신 분들이다. 우리가 공원과 도로변 나무들, 시민이 이용하는 산책길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신 분들. 그리고 행정 업무 처리 프로그램 내 생활민원 접수창구인 ‘시민생활전망대’에도 우리 과로 접수된 민원으로 넘쳐 난다.

이렇게 매일 항의성 전화와 ‘시민생활전망대’의 요구에 시달리는 우리 과 직원들도 박 여사님 가족이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해준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처럼 울컥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공원과 녹지, 산책길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꾸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또 다른 많은 박 여사님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주요 도로변을 걸으면서 각양각색으로 피어 있는, 우리가 심은 꽃들을 보면서 고맙다고, 잘한다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싶지만 일부러 전화하긴 쑥스럽고 멋쩍으셔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우리 공원관리과 직원 모두는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더 많은 박 여사님들이 있다고 믿으면서 오늘도 우리 청주시를 꽃의 도시로, 좀 더 푸르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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