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제가 활을 배운 것은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침에 눈을 뜨기기 무서울 만큼 몸이 무겁고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으로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활을 배운 것인데, 활을 배우러 가서는 또 책을 쓰는 엉뚱한 짓으로 체력을 탕진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도 싸지요. 그래도 건강은 활을 통해서 꾸준히 좋아졌는데, 아내의 걱정은 여전했습니다. 무언가 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한 시민단체의 교육에 침뜸이 있어서 신청했습니다.

열흘 간 진행된 침뜸 강의를 들으면서 활쏘기가 놓인 상황과 똑같은 장면을 마주쳤습니다. 약과 달리 침뜸은 차원에 따라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옛날 우리네 풍속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살던 고향은 시골이었는데, 그 동네에는 4관을 놓는 분이 두 분이 있어서 급체한다든지 졸도한다든지 하면 사람들이 얼른 그 분에게 달려가서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전문의사도 아니고 의학에 대단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많은 병들에 대해 응급처치를 하고, 그런 뒤에 읍내 병원으로 가서 확인 치료를 받곤 했습니다.

침은 전문가의 지식이 요구되는 영역이지만,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순 처방이 있어서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인 옛날에는 시골 동네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고 나름대로 낮은 수준의 차원에서 백성들에게 열려 있던 것입니다. 이랬던 것이 한의학이 제도권으로 편입된 1960년대 이후 민간 처방이 법의 규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혈압으로 당장 코피를 쏟는 우리 어머니에게 손끝을 따고 손목 위쪽의 압통점(극문)에 실침을 찔러놓으면 뉵혈이 5분 내로 멈추는 이 응급처방을 두고, 택시를 불러서 병원까지 가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이런 응급처치를 하지 말라고 법이 말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 단체의 침뜸 교육은, 이런 침뜸 처방을 소개하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처방들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쟁이인 저는 이 강의를 들으며 본능처럼 촉이 왔습니다.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제 머릿속에서 순서를 재구성하여 미신으로 치부되는 것들의 배경에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이 서려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야겠다는 판단이 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침뜸이 문제가 아니라 동양 사회를 2천년간 떠받친 어떤 사상의 그림자를 침뜸에서 본 것입니다. 결국 침뜸에 드리운 그 이론을 밝히자면 침뜸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침뜸을 통해서 그 이론을 드러내어 지금까지 우리가 미신으로 몰아낸 것들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이고, 그 중에는 정말 되살려 쓰면 유익한 것들이 많다는 말을 글로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예컨대 손가락 끝을 따면 왜 급체가 풀리고, 사관을 놓으면 체한 증상이나 머리 아픈 증상이 호전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간단한 민간처방만을 기억하지만 그 간단함 속에는 음양오행이라는 어마어마한 동양 사상이 서려있습니다. 그 거대한 사상의 그림자 중 한 자락이라도 소개하려고 쓴 것이 이 책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