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게 깨끗하게 장사를 하는 네 놈들은 조금도 장꾼들을 속이지 않았다고 단언할 놈 있냐? 장사가 그런 건 당연하지. 니 놈들이나 나나 오십 보 백 보여!”

잠자코 당하기만 하고 있던 장순갑이 객주들이 떼거지로 몰아세우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김 객주님도 얘기를 해보시지요?”

최풍원이 서둘러 김상만에게 눈짓을 했다.

“객주님들, 진정하시고 내 말 좀 들어보시구려. 내가 북진장에서 피륙상을 해보려는 사정은 이렇소이다. 우리네 가정에서 베나 명주는 돈이나 마찬가지 아니오? 그걸 짜느라 집집마다 아낙네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고 있는지 여러 객주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외다. 그런 피륙을 장사꾼들이나 청풍도가에서는 어찌 사들이고 있소이까. 올이 모자란다고 금을 후리고 폭이 좁다고 후리고 길이가 짧다고 후리고 때깔이 안 나왔다고 후리고 시어미 며느리 잡듯 흠을 잡아 피륙 값을 깎아대지 않았소? 그뿐이오, 대부분 피륙을 팔러 나올 때는 집안에 대소사로 급전이 필요할 때가 아니요. 그놈들은 그걸 약점으로 잡아 피륙값을 후려쳐 반 토막 내기 일쑤고, 저희들끼리 짜고 갖은 핑계를 대며 피륙을 사주지 않아 몸이 단 아낙들이 똥값으로 피륙을 팔게 만들고 있소이다. 내가 피륙전을 하면 제 값을 치루고 피륙을 사들이겠소이다. 내가 피륙전을 해보려는 것은 이것이 첫 번째 연유요. 두 번째는 우리 북진에서 나오는 피륙을 팔도 제일 특산품으로 만들 작정이오. 그래서 큰 고을이나 도성 같은 데서도 높은 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오. 그러면 그만큼 우리 북진 내 사람들 살림살이에도 큰 보탬이 될 게 아니겠소이까? 그게 내가 피륙전을 해보려는 두 번째 연유요!”

김상만이 자신이 피륙전을 하려는 이유와 피륙전을 맡게 되면 어찌 해보겠다는 포부까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팔도에 이름난 피륙 산지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북진에서 그런 걸 따라갈 수나 있겠소?”

“김 객주, 당치도 않는 헛꿈 버리고 그냥 편하게 장사나 하시구려.”

“한 번 뿌리 내린 생각을 바꾸기가 어디 쉬운 줄 아시오. 뭘 바꾸겠다고 나대다 쪽박 찬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오. 이제껏 앞사람들이 해왔던 대로 따라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게 최고요!”

객주들이 김상만의 이야기를 가당찮게 여겨 한마디씩들 거들었다.

“객주님들, 우리 북진이라고 맨날 이렇게 살라는 법이 어디 있소? 뜨뜻한 구들에 누워 부른 배를 두드리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애써 일한 것들에 대한 금은 제대로 받아야하지 않겠소이까. 죽도록 일을 하고도 연년이 배를 곯는 것은 다반사고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밤잠도 참아가며 짠 피륙도 청풍도가에 날로 빼앗기는 그런 억울한 일을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거요. 내가 피륙전을 하게 되면 그것부터 바로 잡을 것이외다. 그리고 우리 북진에서 만들어지는 피륙을 팔도에 떠르르한 특산품으로 만들 것이오. 그러니 여러 객주들은 내 말을 믿고 나를 피륙전 객주로 밀어보시오!”

김상만이 객주들을 설득했다.

“김 객주,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이런 촌구석에서 무슨 수로 팔도에 소문난 특산품을 만든단 말이냐?”

객주들에게 돌아가며 욕을 얻어먹고 피륙전도 물 건너가자 장순갑이 노느니 장독 깨는 심술로 꼬라지를 부렸다.

“내가 떼를 몰고 한양을 오가며 숩시 한양 시전을 돌아봤지만, 팔도에 소문난 베도 우리 북진 것보다 월등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소. 그런데도 소문난 그런 피륙은 우리 북진의 피륙에 비하면 천양지차의 금을 받고 있소이다. 우리도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얼마든지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소. 나는 각각의 집안에서 짜고 있는 피륙들을 특별히 관리하여 그런 피륙을 만들게 할 작정이오. 그러면 살림에도 큰 보탬이 되겠지만 나도 그 덕분에 돈을 벌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일 아니오. 내가 피륙전을 해보겠소이다!”

“사람은 역시 큰물을 봐야 해. 우리처럼 맨날 이런 구석쟁이에 처박혀 사니 이 언저리 물건이나 알지 남의 물건 어떤지는 알 턱이 있는가?”

“누구처럼 지 놈 혼자 벌어먹으면 그만이라는 심보보다는, 같이 살아보겠다는 김 객주를 밀어줍시다!”

“되든 안 되든 그 생각이 좋으니 여러 객주분들 김상만을 밀어줍시다!”

아직도 김상만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객주들이 피륙전 객주를 김상만으로 정하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최풍원이 여러 객주들을 뜻을 받아 김상만을 북진장 피륙전 객주로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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