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채마전은 복 객주께서 맡기면 어떻겠습니까?”

최풍원이 복석근에게 채마전을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객주들에게 물었다.

“사근사근한 석근이가 거기는 제격이외다!”

“복 객주가 성격도 세심하고 자상하니 적임자 같소이다.

모두들 복석근을 채마전 객주로 정하자며 목소리를 함께 했다.

“단리 촌놈이 횡재를 했구먼! 지가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치마폭에 싸여 분 냄새 맡으며 장사를 한단 말이여.”

“그럼 니 놈이 해보지 그러냐?”

 개중에는 복석근이 맡은 채마전을 우수이 보며 비아냥거리는 객주들도 있었다. 사내가 할 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채마뿐 아니라 인근에서 나는 산나물이나 버섯도 앞으로는 모두 복 객주께서 관리하게 됩니다. 결코 만만한 상전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북진에는 산과 들이 많아 좋은 임산물과 채마들이 대처에서는 큰 인기를 끌 것이오. 그러니 그렇게 가볍게 볼 일이 아니오!”

최풍원이 히히덕거리는 객주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대행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한결 힘이 솟습니다. 채마전을 맡아 한 번 대차게 해보겠소이다!”

복석근이 여러 객주들 앞에서 다짐을 했다.

“그럼 피륙전은 누가 하겠소이까?”

“포전은 내가 해보고 싶소이다.”

“싸전에서도 밀려났으니 피륙전은 내게 맡겨 주시오!”

“니들이 뭘 본 게 있다고 언감생심 피륙전 타령이냐. 피륙전은 한양물도 많이 먹어본 내가 적격 아니겠냐. 대행수 피륙전은 내가 해보겠소이다.”

피륙전을 서로 하겠다며 객주 여럿이 나섰다.

김길성과 장순갑, 그리고 김상만 객주였다. 누가 피륙전을 맡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피륙전도 만만한 장사가 아니었다. 피륙 장사 역시 쌀장사만큼이나 눈속임이 심한 변화무쌍한 장사였다. 어찌 보면 쌀보다 피륙이 더 그러할 수도 있었다. 장사꾼들이 장난질을 치면 얼마든지 칠 수 있는 것이 피륙장사였다. 그러다보니 같은 물건이라도 상전마다 장사꾼마다 값이 천차만별이었다. 언간한 장사는 수년을 하다보면 어지간히 문리가 틔었다. 그러나 피륙은 달랐다. 피륙장사로 수년을 돌아친 사람도 한 수 높은 장사꾼을 만나면 속아 넘어가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피륙장사 십 년이면 귀신도 속아 넘긴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만큼 피륙의 질과 가짓수가 무지하게 많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의 객주가 피륙전을 하겠다며 나섰다.

“그렇다면 피륙전을 하겠다는 객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다!”

최풍원이 김길성·장순갑·김상만 객주가 왜 피륙전을 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들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사는데 먹성이 제일이지유. 그렇지만 배가 고파도 살기 힘들지만 입성이 부실해 추워도 살기가 힘든 법이오. 허기가 져도 구들이 따끈따끈하고 입성이 뜨뜻하면 그나마 들 움츠러들 거 아니유. 그래서 한 번 해보려는 거유.”

김길성이가 피륙전을 하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우리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삼을 많이 키워왔어유. 삼도 질이 좋구유. 또 뽕나무도 많아 아적부터 누에를 보며 살아왔어유. 게다가 할무이, 어무이들이 낮에는 밭일하고 밤에는 밤마다 이슥하도록 철커덕거리며 피륙 짜는 것을 봐왔슈. 그런데 그렇게 짜도 식구들 옷은 맨날 누더기만 입어야 하는 거유. 그거 왠지 알우?”

김길성이가 객주들에게 물었다.

“그거 모르는 빙신도 있소?”

“뭘 왜 그래. 돈 만들어 가용에 쓰느라 그런 거지!”

김길성이 모르고 객주들에게 묻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철부지 어렸을 적에야 몰랐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그 이유를 알았을 것이었다. 집에서 짜는 피륙은 돈이나 한가지였다. 시골에서 돈을 만드는 방법은 쌀이나 피륙을 짜는 일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쌀은 귀해 식솔들 식량을 하기에도 모자랐고 유일하게 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베나 명주뿐이었다. 그렇게 베나 명주를 장에 내다 팔아 집안에 생긴 급한 일을 메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낙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피륙을 짜도 식구들은 새 옷 한 번 입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김길성도 자라며 형제들 옷을 내려내려 입다 온전하게 자기 옷으로 한 벌 차려입은 것은 장가를 들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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