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대행수, 싸전은 중한 곳이오. 그러니 아무한테나 맡겨서 될 일이 아니오. 더구나 제 욕심만 채우려고 남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자에게는 절대로 싸전을 맡겨서는 안 되오!”

김상만이 장순갑을 빗대어 반대의사를 밝혔다.

“나도 그리 생각하외다. 싸전에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제일 많이 드나들게 될 것이 아니겠소이까. 어찌 보면 싸전은 북진여각의 얼굴이외다. 싸전에서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되면 북진장 전체가 욕을 얻어먹을 것이 아니오. 그러니 요목조목 따져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요!”

영월 맡밭객주 성두봉이도 누구라 딱히 찍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함께 장사를 해오며 장순갑의 속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김상만과 함께 뜻을 같이 했다. 다른 객주들도 직접적으로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장순갑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분위기만으로 누구는 하고 누구는 하지마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최풍원이 도중회의 수장이라 해도 독단적인 결정은 조직 내 구성원의 분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 수장은 어떻게 하든 모든 조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가고 조직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의 책무였다. 최풍원은 장순갑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러내놓고 속내를 내보일 수도 없었다. 장순갑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한 푼이라도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안면몰수 하는 그가 그렇게 할리는 만무했다.

“대행수, 내가 싸전을 하면 우리 도중회 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내겠소이다!”

박한달이 최풍원의 입장을 눈치 채고 자신에게 싸전이 맡겨지면 도중회를 위해 기부금을 내놓겠다고 공약했다.

“나도 그리 하겠소!”

장순갑도 박한달을 따라했다.

“나는 일 할을 내놓겠소이다!”

“나도 일 할을 내놓겠소이다!”

장순갑도 지지 않고 또 박한달을 따라했다.

“일 할이라면 어떤 일 할을 말 하는 것이오? 그걸 확실하게 밝히시오!”

잠자코 돌아가는 분위기만 살피고 있던 황강객주 송만중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역시 송만중은 계산속이 밝은 사람이었다.

“이득금에 일 할이오!”

이번에는 장순갑이 먼저 제의했다.

물건을 팔고 남은 이득금의 일 할을 내놓겠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쌀이라 매일처럼 끊임없이 팔리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쌀 값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누구나 쌀 값을 잘 알고 있기에 장사꾼들이 장꾼들을 속여먹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다른 물건에 비해 장사꾼에게 돌아오는 이득금이 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장순갑이 쌀을 팔고 남은 이득금에 일 할을 내겠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객주들도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장순갑이 득의만만했다.

“나는 쌀을 판 매출의 일 할을 내겠소이다!”

이번에는 박한달이 장순갑보다 더 큰 제의를 내놓았다.

장순갑의 이득금에 대한 일 할과 박한달의 매출의 일 할은 큰 차이가 있었다. 가령 상상품 쌀 한 섬을 닷 냥이라 치고 하루에 열 섬을 팔았다고 하면 매출은 쉰 냥이다. 쌀 한 섬을 팔아 한 냥 닷 푼이 남는다고 하면 이득금은 열 닷 냥이다. 그러면 박한달은 매출의 일 할을 내겠다고 했으니 닷 냥을 내는 셈이고, 장순갑은 한 냥 닷 푼을 내는 셈이니 큰 차이가 있었다.

“에이, 이놈아! 그렇게 내놓고 뭘 처먹을게 있냐? 개뿔도 없는 새끼들이 허세는 더 부린다니께!”

장순갑이 버럭 화를 내며 박한달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여러 객주님들, 난 매달 기금을 그리 내겠소이다!”

박한달이 장순갑의 욕지거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해도 아니고 매달 기금으로 매출의 일 할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지랄도 퍽도 한다. 쌀이 금가루라도 된다는 말이냐. 쌀 팔아 얼마나 번다고 매달 그 많은 돈을 낸다냐? 난 그만 둘란다!”

결국 장순갑이 두 손을  들었다.

“그럼 북진장터 싸전은 박한달 객주가 맡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최풍원이 선언하자 모든 객주들이 박수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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