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각 마을에 임방이 확정되고 북진장터 상전에 객주들 물목이 정해지면 우리 북진여각 관할의 상권 길목마다 물산 보관소를 만들 계획이오. 여러 임방 객주들이나 임방에 딸린 행상들은 장사를 다니며 바꿈이 한 물산들을 그곳까지만 가져오면 됩니다.”

“그럼 거기에 갖다놓으면 여기까지는 누가 옮긴단 말이유.”

“그건 우리 동몽회 회원들이 할 겁니다. 이제부터 임방과 상전 객주들께서는 장사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설령 원거리 행상을 갔다고 하더라도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닐 염려가 없습니다. 산지에서 가장 가찹게 있는 보관소나 임방에 물산을 맡겨두면 우리 여각 동몽회원들이 가지러 갈 것입니다.”

장사꾼들에게 짐은 떼어버릴 수 없는 혹과도 같았다. 그것은 특별한 운송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은 길이 발달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수레는 고사하고 소나 말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도 큰 고을이나 평지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길은 기껏해야 몸집 작은 노새나 사람들이 풀숲을 헤치며 겨우 빠져 다닐 수 있는 그런 형편없는 길이었다.

그러다보니 장사꾼들, 특히 등짐을 지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행상이나 보부상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짐이었다. 자신의 집에서 팔 물건을 지고 산지까지 가는 것도 문제였고, 산지에서 맞바꾼 무거운 곡물과 산물을 집까지 옮겨오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 번 집을 떠나면 물건을 모두 팔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몇 배나 불어난 짐을 지고 다녀야 하는 일은 곤욕이었다. 집으로 옮겨와서도 장사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바꿈이를 해서 장사해온 물산들을 팔아야 식구들도 먹고 또다시 장사를 할 물건을 떼어올 수 있었다. 그러려면 다시 물건을 지고 도가가 있는 큰 마을의 장터나 경강상인들이 닻을 내리고 물건을 풀어놓은 나루터까지 또 지고가야 했다. 그러니 행상들 등에서는 짐 떨어질 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북진여각에서는 임방도 해주고 초도 물건도 밑천 없이 대준다 하고, 물건을 떼고 넘기는 것까지 대신 해주며 거기에서 생기는 이득금까지 객주들에게 분배해주고, 장사꾼들에게 가장 큰 짐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결해준다고 하니 객주들 입장에서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풍원의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북진여각 휘하의 객주들 편의를 봐주기 위함이었지만, 진정한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최풍원은 각 임방에서 장사를 통해 거둬들인 물산들을 북진여각으로 직접 옮김으로써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산지에서부터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함께 깔려 있었다.

“저어기 청풍도가 밑에서 장사하던 때를 생각하면 횡재나 다름없소이다. 이런 장사라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수월한 장산데 마다할 까닭이 없지 않소?”

서창에서 온 황칠규가 북진나루 건너 청풍읍성 쪽을 가리키며 자신은 북진여각의 일원이 되겠다며 최풍원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지도 아재들이 보살펴준다면 한 번 해볼랍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면 청풍도가에서 당한 설움을 꼭 되갚아 줄거유!”

항아리 장수 금만춘도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른 임방 객주들도 이제는 결단을 내려주시오! 어떻게들 하시겠소?”

 최풍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각 지역에서 온 임방 객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흑백을 분명히 하여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평생을 사람들 눈치만 보며 제 생각을 주장해본 일이 없는 뭇 사람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면서 술에 물탄 듯 물에 술 탄 듯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쏠리는 대로 흔들리는 대로 살아온 것이 뿌리 깊게 박힌 그들 습성이었다. 그래야만 그나따나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온 비결이었다. 그렇지 않고 지 생각을 발설하며 골탱이를 부렸더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터였다. 몸에 배어있는 그런 오랜 습성이 무슨 일이든 결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이들이 결정을 망설이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가족이었다. 만의 하나 삐끗하여 자신이 잘못된다하면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가솔들은 몽땅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냥저냥 하던 일을 하면 위험한 일 겪지 않고 밥은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새로 일을 저질렀다 잘못 되는 날이며 없는 놈은 근본이 뿌리 채 뽑혀버리고 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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