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사월이라 청주에도 벚꽃이 만발하였다. 무심천 벚꽃을 시작으로 우암산 우회도로에도 산성에도 봄, 벚꽃은 어김없이 피고 진다. 인간사 무슨 일이 일어나든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사월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의 기억 속 사월도 다시 돌아왔다.

내 차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아직도 리본을 달고 다니느냐며 누군가는 한심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또 누군가는 무섭다는 이도 있고 또 누군가는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남 일에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듯 또는 색깔론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과연 그날 사월은 잊혀야 하는가.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한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아침 TV에선 자막으로 속보를 전했다. 배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별일 다 있다고 생각했다. 뉴스는 가짜였고 누구도 침몰하는 배에 접근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남긴 채 선장과 선원들은 유유히 배를 빠져나왔고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생때같은 생이 차디찬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1994년 건조된 낡은 배를 수입해 정부의 규제 완화 명분으로 무리한 증축과 구조변경이 이뤄진 세월호의 참사는 어쩌면 예견된 일이 아닐까. 자본가는 타인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자본가와 한통속이 된 권력자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현재까지 밝혀진 진실은 없다. 2015년 4월 세월호 인양을 결정하고 3년 만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은 구속기소 되었지만, 침몰 원인과 침몰 후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는 밝혀진 것이 없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304명, 꽃 같은 아이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식 날 장미와 향수도 받아야 했고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봄날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야 할 우리 아이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투성이였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촛불을 든 민중의 손은 바로 혁명이다. 거리의 촛불은 전국에서 일어났고 마침내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렸다.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귀한 죽음마저 폄하시키는 것이 국가였다.

‘세월호 선체 내부 수색 과정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다수 발견되기 시작’

‘3층 선미에서 수습하여 DNA 검사를 의뢰했던 유골의 신원이 단원고 학생으로 확인’

머지않아 벚꽃 진자리에 새순이 돋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계절은 봄을 지나 가을로 나갈 것이고 사월은 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유골 같은 봄, 사월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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