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 덮인 지알라 발리산 위용 ‘압도’
만년설 덮인 지알라 발리산 위용 ‘압도’
  • 충청매일
  • 승인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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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⑥
   
 
  ▲ 연오호(然烏湖)를 둘러 싸고 있는 고봉설산들이 구름을 헤집고 있다.  
 

2004년 8월1일, 아침 일곱시가 좀 넘어 출발한다.

좌우로 펼쳐지는 이름 모를 산정에는 어김없이 눈이 쌓여 날이 갈수록 표고가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달이란 마을을 지나 막 고개를 오르려는데 길목 군 초소에서 젊은 병사가 차를 가로 막는다.

고갯길 보수 공사중이라 통행을 금지하는 것이며 오후 늦게 아니면 내일 아침에나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족기사가 나서고 수완 좋은 장사장이 접촉해 공사 책임자에게 중국 돈 300위엔을 주고 세시간만에 가까스로 빠져나와 통과할 수 있었다.

고개 넘어 노새를 이용해 보리를 수확하는 고산족 마을을 지나 주변에 침엽수가 울울창창한 연오호(然烏湖)에서 잠깐 쉬며 촬영을 한다. 길고 긴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면서도 간혹 길가에서 보수 공사하는 현지인들을 보면 또 길이 끊기질 않나 조마조마 하면서 색다른 풍경에 사로잡힌다.

살윈강 상류를 건너 팔숙(八宿)에서 점심을 먹고 계속 강행군이다. 산비탈에 온통 초록으로 둘러 쌓인 산골마을을 지나치고 계곡을 건너는 등 본 것만큼 느끼기에도 바쁜 일정이다. 드디어 멀리나마 만년설의 히말라야 연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늦은 오후 가까운 산 사이로 잘생긴 설봉을 촬영한다. 해발 7천293m의 지알라 발리 산이다. 안개가 가로지르며 영봉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송종촌이란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좌우로 고산들이 늘어서 있으나 날이 어두워 내일 아침에 다시 올라와 촬영하기로 하고 예정대로 파밀(波密)로 향한다.

다음날 아침 촬영장비를 챙기는데 동충하초를 구입한다는 연락을 받은 현지인하고 경찰이 호텔로 찾아온다. 가져온 동충하초의 총액수가 많아 경찰을 대동하고 왔다고 한다. 적당한 양을 구입하고, 장사장은 마을을 둘러본다고 해 정선생과 필자만 지프로 이동, 어제저녁에 지나친 송종촌 근처의 산을 촬영한다. 울창한 삼림이 중국당국의 벌목에 의해 많이 훼손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가스가 끼어 산정의 본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벗겨질 때까지 기다릴 처지도 못돼 그런대로 촬영을 마치고 장사장과 합류해 12시30분쯤 파밀을 출발한다.

티베트땅에 들어서고 부터는 초원에 흰색의 스투파(우리나라 불닭과 같음)가 수호신인양 의연히 서있기도 하고 고갯마루엔 어김없이 탈쵸와 룽다(천에 경전이나 기도문을 새겨, 그것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 온 세상에 전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성황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음)의 깃발이나 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을 근처의 초원이나 계곡물가엔 티베트인들이 즐기는 시알랑축제(초원에 순결과 행운을 상징하는 화려한 무늬의 흰색 텐트를 치고 호화스러운 복장을 한 남녀가 모여 대자연의 은덕을 기리는 축제)가 가축이 살찌는 여름철인 8월에 많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이 작으면 소규모로, 마을이 크면 대규모로 일주일 이상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는 티베트 뿐 아니라 옛날 티베트땅의 일부였던 청해성,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 등에서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좀 지나서 티베트의 강남이라 불리우는 임지(林芝)라는 소읍에 도착한다.

성도를 출발한지 일주일만에 모처럼 규모도 꽤 크고 깨끗한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큰 물을 끼고 있으면서 고층건물도 더러 있는 신흥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녘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나중에 이야길 들어보니 정책적으로 한족을 이주시켜 신흥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로 한바퀴 돌아보니 고급호텔도 있고 유흥주점도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도저히 고산준령속의 오지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3일은 아침부터 찌는 듯 한 날씨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치는데 개와 마찬가지로 돼지 몇마리가 거리를 어슬렁 거린다. 그 돼지를 본 장사장이 삼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해 그 마을 식당에 들러(별도로 정육점이 없이 식당에서 도살함)돼지고기와 마늘을 구입, 길가 계곡에서 가스버너를 피워 돌구이를 한다. 한족기사 고군은 삼겹살 한첨을 입에 넣더니 손사래를 치며 멀찌감치 앉아 가까이 올 생각을 않고, 통역 조선족 허군도 평소 먹어보지 않아선지 물러나 앉는다.

우리 셋은 고기로, 고기사와 허군은 공수해 간 우리의 라면과 햇반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졸음이 오는 나른한 오후, 마침 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30~40m높이의 돌탑(高堡)몇개가 보여 다가가니 관리인까지 있다. 설명인즉, 13세기 몽고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요새인 동시에 망루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보니 편석 조각들 만으로 쌓은 것이 아주 정교해 기계를 사용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어중간한 저녁 무렵 공포강달(工布江澾)이라는 마을에 들러 하루를 묵고 갈 요량으로 빈관을 찾으니 가는 곳마다 여러가지로 도저히 잠잘 곳 같지가 않다. 상의끝에 밤새워서라도 성도 라사(拉薩)까지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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