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겨울 산행을 유일한 취미로 하는 등산가의 이야기다. 하루는 평소에 오르지 못 했던 산정(山頂)을 이번만큼은 꼭 오르겠다고 다짐을 하고 험한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었다. 해가 저물고 영하의 추위 속에 갑자기 눈보라까지 몰아 쳤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하고 생각할 쯤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그 불빛은 그가 살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에서 힘겹게 찾아간 허술한 초가집에 이르자, “계십니까, 계십니까” 주인을 찾았다. 그때 어떤 할머니가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정신이 혼미해져 무조건 방문을 열고 들어가 쓰러져 자고 말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깨어보니 할머니가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오.”

“아, 죄송합니다. 허락도 없이 이렇게 폐를 끼쳐서…”

“아니오. 더 머물다 가시오. 눈보라가 멈추려면 며칠을 더 있어야 한다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등산가에게 귀중한 겨울양식을 꺼내어 함께 며칠을 보냈다. 할머니는 “나도 자네만한 아들이 있었다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이놈의 산이 문제요”하며 탄식을 했다. 등산가는 생명의 은인인 할머니에게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를 생각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보니 온통 방문은 구멍이 나고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고 너무나 허술했다. 그래 할머니 집을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새로 사드려야 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등산가는 거대기업의 회장이었다. 눈보라가 끝나는 날 회장은 몰래 거액의 수표를 꺼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거 받으세요. 이거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 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그런 다음 겨울이가고 따뜻한 봄이 되었다. 회장은 또 다시 그 산을 정복하겠다고 등산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과연 따뜻하게 지내고 계실까? 궁금하고 끔찍한 등산 경험도 있고 해서 그 산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 집이 그대로 있었다. 뛰어 들어가자 방안에서 부패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할머니는 홀로 죽어 계셨다. 아마도 겨울 양식도 떨어지고 작년 겨울에 허술한 집이 너무나 추워 동사한 듯 보였다.

“아~ 이럴 수가 있나.” 내가 분명 그때 큰돈을 드렸는데. 잘 살펴보니 그때 내가 준 수표가 창문 구멍 난 곳에 문풍지로 사용된 것을 발견했다. 아뿔싸. 그때서야 회장은 세심하게 보살펴 드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면 세상만사가 휴지조각이 된다는 것을. 그때 할머니가 주신 그 귀한 음식이 내 생명과 같은 보석인데도 나는 그것을 휴지로 만들어 드렸구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 일까. 주변에 귀한 보석 같은 일들이 있어도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면 귀중한 보물이라도 문풍지처럼 된다는 것을. 할머니의 인간적인 사랑이 천사와 같거늘, 사용 할 줄도 모를 수표 한 장으로 내 생명의 은혜로 착각한 회장의 비정함이 느껴진다. 전국적으로 홀로 사는 독거노인 90만명 시대! 산속에 사는 할머니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매년 70명씩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100세 시대 이웃과 가족을 잃어버린 잔혹한 자화상이 곳곳에 숨어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환경에 처한 독거노인들에게 국가·지자체의 공공복지 돌봄 서비스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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