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청매일] “저것들이 감히 우리 도가를 넘봐! 어림도 없지!”

김주태가 말은 그리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제게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어찌 서방님 은덕을 모른 척 하겠습니까요. 저놈들에게 끍어 모으면 오 할을 현물로 바치겠습니다요!”

최풍원이 김주태의 표정을 살피며 큰 미끼를 던졌다.

“오 할!”

“왜 적습니까요?”

최풍원이 김주태의 속셈을 떠봤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네가 정 그러하겠다니 그리 하자구나.”

드디어 김주태가 최풍원에게 고을 사람들의 빚 장부를 몽땅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렇잖아도 고을 사람들의 빚 장부는 김주태에게 계륵과도 같았다. 장리쌀 한 말을 빌려주고 한 섬으로 불리고 이자에 이자를 붙여 두 섬 석 섬으로 불려 빼먹던 화수분 같았던 고을민 착취도 예전 이야기였다. 근자에 들어 살기가 너무 혹독해지자 마을마다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마을에 남아있다해도 살기가 각박해진 사람들이 그전처럼 고분고분하게 빚진 것을 갚지 않았다. 곡괭이나 낫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빚을 졌다고 갚지 못해 미안해하며 머리를 조아리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동안 사람들이 관아나 부자들로부터 당해온 까닭이었다. 그런 차에 쌀과 돈 괘를 들고 와 고을민들 빚을 갚겠다니 자다가 떡이 생긴 격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고을민들에게 거둬들인 물산의 오 할을 자신에게 떼어준다고 하니 김주태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그럼 서방님, 장부를 내주시지요?”

“알았다. 잠시 밖에 나가 기다리거라!”

김주태가 최풍원에게 마당에 나가 기다리며 장부를 가지고 나가겠다고 했다. 자신의 비밀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풍원이 마당으로 나오며 강수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후 김주태가 고을민들의 빚을 적어놓은 장부책을 꾸러미 채 들고 방에서 나왔다. 그 순간 강수가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무뢰배들을 밀어제치고 빗장을 열었다. 순식간에 동몽회원들이 도식이를 따라 대문을 박차고 도가 안으로 들어왔다. 뒤를 이어 각 마을에서 온 고을민들이 줄줄이 밀고 들어왔다. 청풍도가 무뢰배들이 막아서려했지만 수백 명이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몰려드니 지레 겁을 먹고 힘을 쓰지 못했다.

“저기 김주태가 있다!”

“김주태부터 잡아 꿇려라!”

성난 고을민들이 장부를 들고 서있던 김주태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각중에 당한 일이라 김주태는 얼이 빠져 발짝도 떼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사람들이 김주태를 개 끌 듯 끌고 청풍도가 앞 집회가 열리고 있던 장마당 쌀더미 앞으로 갔다.

“네 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김주태가 독이 오른 고을민들에게 끌려 나왔으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호령을 했다. 장부 꾸러미는 첩년 끌어안듯 잔뜩 품에 품은 채였다. 그때부터 다시 청풍도가와 김주태를 성토하는 고을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 양반아, 남의 천삼을 하수오라고 날강도 짓을 하더니 꼴좋소이다!”

심마니 근수가 김주태에게 포악질을 퍼댔다. 근수가 김주태에게 망신을 주자 그동안 당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와 울분을 쏟아냈다.

“백주 대낮에 날강도 놈도 당신보다는 나을거유. 보리쌀 꿔주고 쌀로 받는 씨종머리는 세상천지에 청풍 사는 김주태 말고는 없을 거유!”

“개만도 못한 놈! 남의 항아리를 통째 꿀꺽하고도 어찌 그리도 뻔뻔하냐.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찌 사람 탈을 쓰고 그리 할 수 있단 말이냐?”

도공 도운이가 한이 맺혀 피 끓는 소리를 했다.

“도가에 바친 내 입회비 당장 내놓거라!”

서창 소금장수 황칠규가 김주태 면상에다 대고 그동안 당한 분풀이를 뱉아 냈다.

“저런 놈은 부랄을 까야 혀!”

“냄새나서 개도 뱉아낼 그깟 놈 부랄 까서 뭘 할꼬!”

김주태를 능멸하는 소리에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그래도 김주태는 장부 꾸러미를 잔뜩 끌어않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포악질을 하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속이 뒤집혀 더욱 창피를 주며 놀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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