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동안 청풍도가와 도운네 양평 가마의 관계는 원활하게 돌아갔다. 그러다 점차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부지깽이도 덤빈다는 지난해 가을이 무르익어 갈 즈음이었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정월부터 곧 장 담그는 철이 될 터이니 지금부터 미리 장독을 마련해놓는 것이 좋겠다며 대량으로 장독을 주문했다. 도운은 청풍도가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그날부터 준비를 시작해 겨우내 쉴 틈 없이 독을 구워냈다. 가마가 식을 새도 없이 일을 재촉해 정월 장을 담그기 전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가마 안팎으로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독이 성벽처럼 쌓여있었다.

“항아리는 다 만들어 산처럼 쌓아놓았는데, 동지가 지나고 소한 추위도 지났는데 청풍도가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외다. 이제 대한 추위 지나고 나면 곧 정월 아니오이까? 그러면 이제는 항아리들을 가져가야 장 담그는 사람들도 미리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정월 장을 담글 게 아니오이까? 대한 추위를 지나고 가져갈라나 하고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기별이 없는 거외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몸이 달아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내가 청풍도가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도가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던 도운이 속이 터지는지 이야기를 멈췄다.

“도가에서 뭐라 했소?”

“뭐가 잘못 됐소?”

모여 있는 사람들 틈바귀 여기저기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댔다.

“항아리를 가져갈 수 없다는 거외다!”

“자기들이 주문해놓고 가져갈 수 없다니 그건 뭔 소리요?”

“왜 가져갈 수 없단 거유?”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황당해했다.

“우리 항아리 금이 너무 비싸서 그렇다는 거외다. 그래서 여적지 그 금으로 해왔던 건데 무슨 얘기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다른 옹기쟁이들은 우리 가마의 절반도 안 되는 금에 들어온다는 거외다.”

“항아리는 저렇게 많이 만들어놓으라 해놓고 이제 와서 느닷없이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나 참 기가 맥혀서 자기들은 알바 아니라는 거외다. 그래도 항아리를 팔아야 그동안 일 부린 사람들 품삯도 주고 식구들도 먹고 살아야하기에 어떻게 하든 성사시키려고 사정을 하며 매달렸지요. 그런데 뭐라는지 아시우? 팔 할에 넘기라는 거외다.”

“지금까지 팔 할로 청풍도가에 넘겼다하지 않았소?”

“그게 아니라, 도가에서 팔 할은 먹어야겠으니 나에게 이 할을 먹으라는 얘기였소! 팔 할 먹던 것을 갑자기 이 할만 먹으라니 그게 말이요 방구요. 항아리는 그냥 만들어지냔 말이요. 좋은 흙을 찾아야 하고 그걸 지고 와야 하고 그 다음엔 채로 치고 어깨가 빠지도록 반죽하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물레를 돌려 만든 항아리를 구우려면 나무도 해와야 하고 몇 날 몇 칠 잠도 못 자고 가마에 불을 지펴야 하는데 거저 되는 거냔 말이요. 그런데 이 할만 받으라니 기가 맥히고 코가 맥히더이다. 청풍도가에 전매권을 맡기기 전 만 해도 식구들끼리 항아리를 만들고 그걸 팔아 밥이나 먹으면 되니 이 할이라도 넘기라면 넘길 수 있었다오. 그렇지만 이젠 그렇게 할 수 없는 형편이 아니오? 식구들끼리만 일을 했다면 우리만 굶으면 되지만, 워낙에 많은 물량을 주문해 흙도 사고 나무도 사서 쓰고 남들까지 불러 썼으니 남의 물건 값과 남들 부린 임금은 줘야 하는 것 아니오? 그래서 이 할에 항아리를 내놓으면 빚도 갚을 수 없다며 사정을 해도 쇠귀에 경 읽기였소이다.”

“천하에 개잡놈들!”

“개만도 못한 놈들!”

도운은 그렇게 헐값에 넘기면 남의 빚도 갚지 못할 형편이라 청풍도가에 넘기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금만춘을 다시 불러 어떻게든 팔아볼 방도를 구했다. 금만춘이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던 장돌뱅이들을 불러 모아 항아리를 팔면 파는 대로 반을 주겠다고 약조했다. 금만춘과 장돌뱅이들이 항아리를 팔기위해 청풍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금만춘과 장돌뱅이들이 독을 지고 장에 나가면 청풍도가 놈들이 장세를 물리고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횡포를 부려 도무지 장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설령 운 좋게 항아리를 팔아도 남는 것이 별반 없었다. 장세도 비싸고 청풍도가에서 항아리 값을 폭락시켜 놓은 까닭에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수중에 들어오는 것은 빈손이나 다름없고 어깨쭉지만 빠질 뿐이었다. 장돌뱅이들은 두 파수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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