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도로 옆 건물 작은 화단에 키 작은 앵두나무 하나 있다. 손바닥만 한 화단은 도시의 유일한 흙이자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출퇴근길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어느 해 봄인가 싹이 막 움트는 나무를 무심히 어루만지는 노인을 봤다. 아주 오래도록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가 키운 냉이와 쑥을 뜯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하고 선명하게 다가와 한 줄의 글을 써 보았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았다. 나도 노인처럼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앵두나무 곁에 가보았지만, 노인의 시선과 마음을 따라 갈 수 없었다. 몇 해 지났지만, 앵두나무는 여전히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다가오는 봄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앵두나무는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청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을 생각하면 마치 키 작은 앵두나무 같다. 길게는 수십 년 넘는 세월 예술 활동을 하는 선배들과 이제 막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걷는 후배들 모두 앵두나무처럼 꿋꿋하다. 무심천 변 벚나무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잊지 않고 꽃을 피운다. 추우면 추울세라 병들면 아플세라 지극정성 보살핌을 받지 못하더라도 기어이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겨울은 너무 춥고 외로운 계절이다.

내 아이가 중3에 올라가니 15년 전엔 나도 미혼이었고 경제관념도 없었다(지금도 없다). 내가 아는 후배들 역시 20대 젊은 열정 하나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이제 집집마다 아이가 있고 어엿한 가정을 꾸렸다. 이제 그들도 30대를 훌쩍 넘었다. 예술은 익어가고 있으나 먹고 살아가는 걱정이 앞서는 나이가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없다. 세상은 돈이 지배하고 돈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하여 유명해져서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연예인이 되지 못하면 좋은 집도 좋은 차도 좋은 술도 그림의 떡이다. 사람들은 키 작은 앵두나무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이 겨울 예술가들은 일 년 농사를 위해 부지런히 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예술행정은 연기보다 노래보다 장구 치는 일보다 어렵다. 민예총이나 예총처럼 조직화된 단체도 그러할진대 개인의 경우는 더욱 혹독할 것이다. 미처 겨울이 가기 전 다른 길로 떠나는 후배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대본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허리춤 졸라가며 연습하는 나날은 예술인의 경제엔 마이너스다. 이 무한한 가치는 산림이 주는 혜택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누구도 밥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술가의 경제관념에는 돈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시나브로 봄이 오고 언 땅이 녹으면 어느 볕 좋은 날 키 작은 앵두나무는 냉이와 쑥을 키울 것이며 노인의 따듯한 손길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도심 빌딩 / 버려진 빈터에 / 쭈그려 앉은 노인이 / 늙은 봄을 뜯는다

주름진 손에 쑥쑥 자라는 봄이 / 한 움큼 잡혀있다

오도 가도 못 하고 / 그녀의 손을 핥는다

아직 여린 봄을 / 늙은 손 하나가 쓰다듬고 있다

 -졸시 「늙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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