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냄새는 기억을 공유한다. 아슴아슴 피어오르는 냄새에서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고 그래서 후각이 기억하는 것들에는 통증이 따르기도 한다.

며칠 전부터 집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친정어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간장바가지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짭조름하고 찌뿌둥한 냄새가 거실에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려니 하고 무관심하다가 베란다 문을 열어보고서야 깜짝 놀랐다. 베란다 바닥에 간장이 흥건하게 젖어있고 악취가 났다.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올가을에는 딸애가 좋아하는 고추 지를 담아야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기억한 지인이 고추와 깻잎을 꽤 많이 갖고 왔다. 그녀는 직접 농사지은 무공해 고추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간장에 마늘, 양파, 파뿌리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맛 간장을 끓였다. 항아리에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놓은 깻잎을 차곡차곡 넣고 식힌 간장을 부었다. 고추도 식초를 탄 물에 담갔다가 씻고 약이 오른 청양 고추는 대충 골라냈다.

항상 넉넉한 그녀의 마음처럼 손도 얼마나 큰지 중간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도 고추가 남았다. 몇 개 안남은 고추를 버리기 아까워 항아리에 눌러 담고 간장을 부었다. 고추가 많아서인지 요량했던 간장을 부우니 항아리 주둥이까지 고추가 올라왔다. 고추가 뚜껑에 닿았지만 무리해서 뚜껑을 덮었다.

사흘 째 되던 날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니 고추가 수북해 항아리가 비좁아 보였다. 그 날 고추를 덜어내고 한지로 뚜껑을 봉했어야 했는데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화를 만든 것 같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간장이 끓어 넘은 항아리의 고추는 누렇게 변했다. 고추가 간장에 잘 잠겨 맛이 들어야하는데 간장 없이 떠있던 고추는 물컹거렸다. 넘쳐흐른 간장으로 매란 없는 베란다를 씻어 내며 사람이나 사물이나 용도에 맞게 뚜껑을 잘 덮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껑은 내용물을 지키고 보존기간을 높이기도 하지만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도 한다. 뚜껑도 내용물과 용도에 맞게 잘 덮어야 탈이 없다. 물이나 간장 같은 액체는 플라스틱이나 쇠로 된 뚜껑을 사용해야하고 발효식품은 숨을 쉴 수 있게 한지나 헝겊으로 봉해 주어야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뚜껑을 잘못 닫으면 음식이 상하기 쉽고 신선도가 떨어진다.

뚜껑을 잘 닫는 것만큼 뚜껑을 잘 여는 것도 중요하다. 살면서 뚜껑을 잘 못 열어 내용물을 쏟은 일이 여러 번 있다. 액체가 들어있는 병뚜껑을 잘못 열어 낭패를 본 일도 있다.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뚜껑은 사람의 입과 비슷하다. 뚜껑처럼 사람의 입도 여닫을 때 늘 조심해야한다. 살다보면 자칫 잘못하여 말을 쏟아놓고 후회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한 번 뱉어낸 말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뚜껑에도 종류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여러 부류가 있다. 꼭 할 말 아니면 입을 열지 않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작은 입으로 어디에서나 잘난척하는 사람, 남을 얕보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말은 소통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지만, 때로는 약이 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부드럽고 좋은 말은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고 가시가 있는 말은 상대를 아프게 한다. 귀가 좋아하는 말은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멋진 말보다는 조근 조근하게 말하는 보약 같은 말이다. 귀는 얇고 간사해서 열 마디의 바른 소리보다 한 번의 칭찬을 더 좋아한다.

살면서 내게도 말 때문에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일이 있다. 두고두고 후회하지만, 이미 내 뱉은 말이라 주워 담을 방법이 없다.

늘 건강하게 사시던 친정어머니가 폐렴으로 쓰러진 뒤 투병생활을 했다. 흡인성 폐렴과 저산소증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하루 사위어가는 촛불처럼 위태위태하던 어머니가 8개월 만에 거짓말처럼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일이 처음이었던 자식들은 어머니를 보내는 일에 서툴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마치 누구의 잘못인 양 서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육남매 중 맏딸인 내가 8개월 동안 어머니 곁에 있었기에 내게 돌아오는 화살도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가 투병생활 하실 때 의사소통이 안 돼는 바람에 오해가 잦았다. 기관절개로 목소리가 안 나오니 표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야하는데 각자 해독하는 방식이 달랐다.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언짢으면 자매들은 마치, 병시중을 드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실을 지키며 지쳐있던 나도 참다못해 한마디하고 말았다. 자매들의 갈등에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며 우셨다. 생각해보니 언니인 내가 참았어야했다. 잘잘못을 떠나 눈 한 번 딱 감고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마음이 착잡하고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말의 성분도 꼭, 물 같이 액체일 것만 같다. 당최 한번 쏟아 놓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쓸어 담고 닦아도 스며드는 말은 뻣뻣하고 오기가 있다.

내가 뱉은 말에 동생은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또한, 나도 동생이 던지는 말에 심하게 아팠다. 형제들 간에도 상처 입은 가슴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우애 있고 돈독한 형제들이라도 부모님 상을 당하면 틈이 생긴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 실감났다. 자라면서 한 번도 다툼이 없던 우리 형제들 간에도 서먹서먹하게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50여 년을 사는 동안 늘 우애 있는 형제라고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했는데 한 순간에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 서먹해졌다.

핏줄이 터지며 생기는 흉터는 아주 오래간다. 우리는 겉으로는 웃고 다독거려도 속까지 아무는데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면서 참지 못하고 내뱉는 말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내가 생각 없이 뱉는 말에 어떤 이는 잠 못 이루고 어떤 이는 가슴에 못이 박인다. 뚜껑을 잘못 열어 내용물을 쏟은 것처럼 내가 한 말로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집안에 떠다니는 간장냄새로 어머니를 불러왔던 고추 지를 다시 손질했다. 누렇게 뜬 고추는 건져내고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골라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욕심내지 않고 고추가 숨 쉴 수 있도록 여유 있게 뚜껑을 닫았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뚜껑을 닫았으니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처럼 아삭하고 맛있는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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